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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게일어

지난 1920년대 초반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아일랜드의 토착어인 게일어(Gaelic) 배우기 열풍이 불었다. 당시 신문에는 아일랜드의 게일어 보존 활동과 문예부흥운동을 본받아야 한다는 기사가 많이 실렸다. 한자로 애란극(愛蘭劇)이라고 표기하는 아일랜드 연극도 활발하게 번역돼 소개됐다. 1921년 영국 지배를 벗어난 아일랜드를 모델로 삼아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디딤돌로 삼겠다는 의도에서다. 우리도 게일어와 영어처럼 일본어와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고 세계 흐름에 맞춰 문화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도 쏟아졌다.

게일어는 고대 켈트어에 뿌리를 둔 언어로 서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캐나다 일부에서도 모국어로 쓰고 있다. 5세기께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스코트족이 스코틀랜드에 정착하면서 크게 스코틀랜드 게일어와 아일랜드 게일어로 나뉜다. 게일어는 2~3개의 모음으로 장모음을 형성하고 철자와 발음 사이의 괴리감이 커 영어에 비해 배우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18세기 잉글랜드의 켈트족 문화에 대한 탄압으로 게일어 사용이 금지되면서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1893년 아일랜드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더글러스 하이드는 ‘게일어연맹’을 설립해 트리니티대를 중심으로 게일어 부활 운동에 나섰다. 아일랜드는 헌법에 게일어를 제1국어로 명문화하고 필수과목으로 가르치지만 사용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4년에는 아일랜드 신임 장관들이 게일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 자격 미달 논란을 빚을 정도였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영어에 눌려 사멸 위기에 놓인 게일어를 지키기 위해 공공 부문의 게일어 사용을 확대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정치인들이 앞장서 게일어 사랑 캠페인까지 펼치고 있다. 유네스코는 몇 해 전 세계에서 3,000개의 언어가 사멸 위기에 놓여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언어의 세계도 탄탄한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법칙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듯하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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