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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노동의 미래, 맞이할 준비는 돼 있나

<김정곤 사회부장>

22년 만에 노사정 대화 나섰지만

해고금지-노동유연화 여전히 팽팽

미증유의 난국에 기득권 내려놓고

경제살리기 해법 함께 고민해야

김정곤 사회부장




아침 출근길 현관 앞에 크고 작은 택배상자가 놓여 있다. 전일 주문한 상품이 새벽에 배달된 것이다. 편리함은 곧 익숙함이 됐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상품을 배달하는 택배기사들의 노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바뀌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형 유통업체 택배기사와 마주쳤다. 그는 무엇엔가 쫓기듯 서둘러 택배상자를 놓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른 아침부터 고생한다는 생각에 물었다. “몇 시까지 배달해야 하나요?” “오전7시 이전에는 (배달을) 마쳐야 하는데 오늘은 좀 늦었어요. 고객님들이 항의전화 하실 텐데 걱정이네요.” 확인해보니 이 업체가 택배기사에게 지급하는 수수료는 건당 1,000원 남짓에 불과했다.

택배기사들은 정규직도 있지만 대부분 비정규직인 특수고용노동자다. 배달이나 대리운전·학습지교사·가사돌봄도우미처럼 정식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용역·도급·위탁 등의 형태로 일한다. 형식적으로는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등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국내에 이런 형태의 근로자는 약 220만명,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택배기사의 열악한 근로환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다시 조명됐다. 비대면 문화의 확산으로 배송물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한 대형 유통업체 택배기사는 새벽 배송 도중 사망했다. 코로나19는 이처럼 경제의 약한 고리부터 파고들었다. 사회 소외계층과 비정규직 등 임시근로자들의 일자리부터 사라졌다. 정부가 특수고용직과 무급휴직 근로자 등에게 150만원의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지원한다지만 근본적인 상황을 해결하기는 역부족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빠르게 진행되던 디지털 전환이 코로나19로 가속도가 붙을 것이 분명하다. 기존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확산하면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고 지금 같은 특수고용직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노동도 나타날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플랫폼 노동자, ‘긱워커’로도 불리는 특수고용노동직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논의가 부족하고 노동 관련 법과 제도도 산업화 시대에서 그대로 멈춰 있다.

5월20일 시작된 원포인트 노사정 사회적 대화.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양대 노총을 포함한 노사정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의 문을 열었다. 미증유의 위기라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서다. 그러나 노동계는 고용 유지와 해고 금지, 경영계는 노동 유연화와 비용 절감을 주장하는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했다. 앞으로 논의에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해법은 없을까. 노사 양쪽이 기존 프레임만 고집하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노동 문제는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 보호가 기본이다. 그러나 경제 난국에서는 근로자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기업, 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근로자는 물론이고 시장 없이, 기업 없이는 경제의 지속적인 선순환은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 서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무엇이 경제를 위한 길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본격화될 노동의 미래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눈앞의 단기 시계에서 벗어나 중장기 시계에서 노동의 미래를 위해 제3의 길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한 국민의 선택과 합의가 필요하다. 코로나19가 가속화한 인류의 대전환기, 우리는 과연 내 생각을 바꾸고 내가 가진 것을 양보할 준비가 돼 있나.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은 절대로 직진하지 않고 때로는 지그재그로 횡보를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과거 역사가, 그리고 오랜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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