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로터리]"우리는 이곳에 남기를 소망한다"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





국가의 표어는 그 나라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드러낸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대한민국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반해 룩셈부르크의 표어는 어쩐지 소박하다. ‘우리는 이곳에 남기를 소망한다.’ 오랫동안 열강 틈에서 시달린 소국(小國)의 시련이랄까. 한 나라의 표어라기엔 속된 말로 ‘짠 내’ 나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를 알고 나면 다르게 느껴진다. 지난 815년 프랑크 왕국에 의한 분할부터 나치 독일 치하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천년 넘게 분할과 합병을 반복했다. 그 표어는 오랜 기간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이들의 절규인 셈이다.

약소국은 특화된 생존전략이 필요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엔 작은 내수시장, 수출로 승부하기엔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여건, 그들은 그곳에서 뜻밖의 활로를 찾았다. 내가 나가는 대신 상대가 나를 찾게 한다. 오랜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런 점에서 펀드 산업은 완벽한 대안이었다. 이제 걸핏하면 침략 당하던 지리적 특성은 접근성 좋은 입지조건이 됐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뒤섞인 역사는 3개 국어(영어, 불어, 독어)가 통용되고 유연한 제도 도입이 가능한 개방성의 토대가 됐다. 자유로운 외환거래 및 자본이득에 대한 최저과세, 최저가의 펀드수수료 등 시장 친화적 제도는 룩셈부르크를 유럽연합, 나아가 전 세계 금융자산의 곳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오랜 외세의 침략, 강대국 사이에 낀 지리적 특성 등 룩셈부르크는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개방적 사고, 유연한 제도 측면에선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저들의 변화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부분은 분명히 있다. 아시아 펀드 허브로의 도약을 꿈꾸며 지난달 27일 시행된 펀드 패스포트 제도에 기대하는 바가 큰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룩셈부르크는 1인당 국민소득 11만 3,000달러로 미국의 2배에 가까운 세계 최고 부국이자 국가경쟁력, 과학기술력, 복지시스템, 살고 싶은 도시 등의 순위에서 늘 최상위권에 랭크되는 균형 잡힌 국가로 성장했다. ‘우리는 이곳에 남기를 소망한다’는 표어는 이제 세계 최고 부국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문구로 읽힌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시급한 화두일지도 모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