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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식스' 이정은 "가치 있는 길은 쉽거나 편하지 않아"

LPGA 홈피에 에세이 '아직 남은 길' 기고

골프인생·가족애·포부 잔잔한 감동 전해

지난해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이정은. /AP연합뉴스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신인왕에 오른 ‘핫식스’ 이정은(24·대방건설)이 끝없는 도전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정은은 2일 LPGA 투어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을 통해 자신의 삶과 골프 여정을 소개했다. 선수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에세이 형태의 ‘1인칭 스토리’를 통해서다. 이정은에 앞서 고진영이 기고한 글 ‘내 할아버지의 딸’과 마찬가지로 잔잔한 감동을 안기고 있다.

이정은은 ‘아직 남은 나의 길(My Road Less Traveled)’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낯선 환경에 대한 도전의 연속이었던 자신의 골프인생,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 미래에 대한 포부를 담았다.

이정은과 가족 /사진제공=이정은.LPGA


이정은은 자신이 4살 때 트럭 운전을 하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장애를 입은 아버지의 어려운 선택으로 9살에 골프를 시작한 순간부터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골프를 중단했다가 15살에 티칭프로 자격증을 따 가정에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골프채를 잡은 그는 더 나은 골프 환경을 위해 전남 순천의 가족을 두고 낯선 서울의 골프아카데미에 들어간 것은 인생의 갈림길이 됐다고 돌아봤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성공을 거두고 고민 끝에 미국 무대에 진출한 그는 지난해 메이저대회인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고 신인왕에도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정은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쉽거나 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가치있는 길은 늘 그렇다. 이제 24살 밖에 되지 않은 내가 오래 전에 배운 교훈이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맺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다음은 이정은의 글 ‘아직 남은 나의 길’ 전문.

모든 삶에는 전환점이 있고, 선택의 갈림길이 있다. 눈 앞에 보이는 넓고 안전하며 쭉 뻗은 길을 택할지, 아니면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좁고 울퉁불퉁하며 굽이친 길을 선택할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그 여정이 얼마나 큰 차이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나는 9살에 골프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지인이셨던 티칭프로님이 골프를 시켜볼 것을 권하셨다. 부모님 역시 내가 바깥에서 운동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트럭을 운전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네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장애를 입으셨다. 당시의 어린 나는 아버지가 결정한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당시 아버지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수도, 인생을 포기하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새로운 환경에 대해 배우고 적응하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셨다.

그 결정은 아버지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 모습은 내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사춘기를 겪는 또래 친구들처럼, 12살이었던 나는 골프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골프라는 운동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떠밀려 배우는 기분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3년 동안 골프를 쉬었고, 부모님은 이해하셨다. 부모님은 내가 행복해지기를 원하셨다.

나는 대부분 한국하면 떠올리게 되는 서울같은 대도시와는 거리가 먼 전라남도 순천에 살았다. 순천에서의 생활은 느리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안다. 그 지역을 떠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모든 이웃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15살 때 다시 골프를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원한 것이었고 티칭프로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골프를 충분히 잘 하게 된다면 순천에서 티칭프로로서 좋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70대 초반의 스코어를 내야 했기 때문에 열심히 운동을 했다. 17살이 되었을 때 내가 알고 있던 서울의 유명한 감독님께서 학교와 골프를 병행할 수 있는 골프 아카데미의 기숙사에 들어오겠냐고 제안하셨다.



그것이 나의 첫번째 갈림길이었다. 나는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내가 집에 머무를 수 있는 확실하고 완벽한 이유였다. 휠체어에 앉아 계신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싫었다. 사실, 나는 좀 무서웠다. ‘내가 그곳에서 훈련할 만큼 충분한 실력일까?’, ‘서울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까?’, ‘내가 향수병에 걸리지나 않을까?’ 등등 걱정이 많았다.

두렵긴 했지만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전환점이었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순천에서 벗어나 부모님으로부터 떨어져 새로운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공부와 훈련을 할 수 있을 만큼 단련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전 보다 골프 실력도 훨씬 좋아졌다.

순천에서는 지역의 작은 주니어 대회와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했지만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었다.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나는 최고의 아마추어들이 출전한 전국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좋은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원래 계획이었다면 19살쯤, 모든 것이 편안하고 친숙한 우리 집 근처에서 티칭프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선택의 결과, 나는 내가 6번째로 이정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KLPGA의 투어 선수가 됐다. 거기서 내 이름 끝에 있는 숫자 6이 유래되었다. 난 숫자에 불과했다.

그 후, 나는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KLPGA 2년차 때 나는 4번 우승했고 상금왕을 기록했다. 그 해 여름, 나는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내셔널에서 열린 US여자오픈에도 출전했다. 그 대회는 나의 첫 메이저 참가였고, 또 미국에서 다른 선수들과 경기한 첫 경기였다.

나는 남들과 다르게 만들어 주었고, 행운의 숫자라고 생각했던 ‘6’을 지키기로 했고 모든 사람이 내 이름 뒤의 숫자에 대해 궁금해했다. 비록 영어를 전혀 못했지만 나는 모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그 해의 US여자오픈에서 5위를 했고, 토요일에 마지막 그룹에서 경기도 했다. 그때 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2018년에는 KLPGA에서 2승을 했고 또 다시 상금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또 다른 갈림길과 마주했다. 한국에 머물면서 KLPGA 대회에서 우승하고 익숙한 사람, 문화, 언어 속에서 경기하며 가족과 함께 음식이나 교통, 환전, 시간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아니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도전하기 위해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단체인 LPGA의 퀄리파잉 스쿨에 갈 수도 있었다. 나는 골프가 아닌 다른 모든 것에 대해 긴장되고 조금은 두려웠다.

어린 시절에 내가 더 일찍 고생스럽고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LPGA에서 뛸 수 있었을까? 아마도 2019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거나 루이즈 서그스 롤렉스 올해의 신인상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편하지는 않다. 나는 신인 시절 내내 나의 영어 실력에 대해 기자들에게 미안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내가 원하는 정도는 아니다. 지난해 가을 롤렉스 어워즈에서 신인상 수상 연설을 하며 감정이 격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투어를 시작한 당시부터 낯설고 이국적이었던 영어 단어와 구절을 외우며 3개월 동안 연설문을 연습했다. 내게는 그 연설을 영어로 해서,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나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모든 연설을 마친 후, 압도될 만큼 큰 박수를 받았다. 눈물나는 순간이었고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올해는 내 영어 실력이 더 좋아질 것이다. 다시 우승할 때는 바라건대 정확한 표현으로 나의 감사를 전하고 싶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쉽거나 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가치있는 길은 늘 그렇다. 이제 24살 밖에 되지 않은 내가 오래전에 배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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