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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전직의원 ‘호치민 역사탐방’에 7,000만원…눈 먼 96억 국회보조금

[2019년 국회 유관기관 보조금 보니]

혁신위 "대거 삭감" 권고 불구

헌정회 생일잔치·해외관광에 보조금

보조금 예산을 수혜자인 의원이 심사

영국 IPSA처럼 "독립기관이 감사" 지적

유경헌 헌정회장(오른쪽)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헌정회관에서 예방 온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인사말하고 있다./연합뉴스




국회가 사업 목적에 맞지 않는 보조금을 대거 줄여야 한다는 ‘국회 혁신자문위원회(혁신위)’ 권고에도 불구하고 현직 국회의원들의 외유성 출장, 전직 의원 해외 관광·생일 잔치 등에 대규모 예산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직 의원이 예산을 심사하는 지금의 구조로는 관행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 외부 독립기관에 국회 보조금 감사를 맡기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치민 관광·생일축하 예산 '삭감 권고'했지만..
서울경제가 1일 국회사무처에 정보공개 청구한 결과 지난해 국회 유관 기관 12개는 총 96억6,69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장 산하 자문기관인 혁신위는 단체 활동 목적에 맞지 않는 사업, 보조금 실행예산 편성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 등은 보조금을 대거 삭감하라고 권고했으나 2019년 그대로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직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사단법인인 헌정회는 66억6,400만원 보조금을 받아 그 중 7,060만원을 회원 67인의 ‘호치민 역사탐방’에 사용했다. 6,959만원을 ‘생신축하 사업비’에 사용했고 임원단 회의 참석비와 교통비 명목으로 각각 5만원을 지급했다. 모두 혁신위가 ‘국민 정서 상 납득하기 어렵다’며 감액을 주장한 내역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의원 외교단체 중 하나인 아시아정당국제회의의원연맹(ICAPP) 소속의 이혜훈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참가자 4명과 함께 3박4일 의원 외교일정에 1,259만원의 보조금을 사용했다. 지난해 12월 말레이시아 테렝가누로 출장을 간 이 전 의원은 격려금과 기념품 명목으로 각각 199만원과 98만원을 썼다. 출장 마지막 날에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주최 측 현지 문화탐방’ 일정을 소화했다. 이 의원 측은 “격려금 선물은 ICAPP 사무국 국가로서 대한민국이 쓸 수밖에 없는 경비”라고 해명했다.

ICAAP는 2억6,100만원의 지원금 중 1,980만을 ‘로고 제작 용역’에 사용하기도 했다. ICAPP 관계자는 “국회 사무처 결산에서 지적받은 사항이 없다”며 “로고를 제작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스토리텔링과 연구가 필요한 예술 작품이라 이러한 가격이 산정됐다”고 설명했다.

'의원 연금' 뺴면 보조금 6년새 11억 늘어
국회 보조금 규모는 지난 2012년 147억으로 정점을 찍고 지금까지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는 ‘의원 연금’이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착시 효과다. 지난 2013년 김광진 전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된 후 의원연금은 18대 전 의원에게만 지급하기로 결정됐다. 이후 전직 의원들이 노환으로 별세했고 헌정회 예산은 2013년 128억에서 2019년 66억으로 6년 새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의원연금 예산은 2019년 헌정회 예산의 79%(52억)에 달할 정도로 국회 보조금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헌정회 예산을 제외한 국회 보조금은 2013년 19억에서 2019년 30억으로 급증했다. 2014년 출범한 ‘한국여성의정‘의 사업 규모가 5년 새 1억에서 5억9,800만원으로 6배 가까이 증가했고 국회국제보건의료포럼(2억200만원), 국회의원태권도연맹(1억700만원)등 단체들이 설립된 결과다.



이처럼 부실 사업들에 대한 지원이 이어지는 이유로는 ‘허술한 보조금 감사’가 꼽힌다. 국회 보조금 제도는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을 기본으로 행정 부처의 ‘보조금 예산편성원칙 및 회계처리기준’에 준해 운영되고 있고, 헌정회는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을 따른다. 2020년 국회 보조금 운영관리기준에 따르면 보조금을 포함한 예산 총액이 2억원 이상인 법인만 공인회계사의 결산 및 검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0년 보조금을 신청한 유관 단체 13개 중 6개(46%)는 예산이 2억을 넘지 않아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제 21대 국회 개원을 앞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 개원을 축하는 대형현수막이 걸려 있다./권욱기자


동료 의원 난색해도 "좋은 사업 아닙니까"
국회 보조금을 감시하는 이들이 그 수혜자인 국회의원들이라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국회 보조금 지원은 유관 단체들의 지원금 요청→국회 사무처의 예산서 작성→국회의장실 검토→국회 운영위원회 예산 심사하는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 이중 운영위 심사 과정에서 의원들이 예산을 갑작스레 편성하거나 삭감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동섭 전 통합당 의원의 ‘국회의원태권도연맹’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7년 이 의원은 ‘법인설립 허가를 받은 지 3년이 지나야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지침에도 불구하고 설립된 지 5개월밖에 안 된 태권도연맹 예산을 3억3,000만원 편성해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운영위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 소위원장이었던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원칙적으로 적용하면 자격이 안 되는 것”이라고 난색을 표했고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이번엔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며 예산 편성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당시 같은 국민의당 소속이었던 최도자 의원이 “좋은 사업 아닙니까. 좀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해 결국 1/3 규모인 1억1,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됐다.

지난 2018년 국회 운영위 예산소위에서는 현재 민주당 의원인 김수흥 전 국회사무처 사무차장이 ‘스카우트의원연맹에 대한 50% 삭감 의견’을 제안했다. 이에 윤재옥 전 통합당 의원은 “각 단체별로 애로사항이 좀 있는 모양인데 한 20%정도 감액하는 걸로 조정하면 어떻겠느냐”고 했고 김승희 전 통합당 의원도 “이의를 제기한 부분에 대해서는 배려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의견을 냈다. 이에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이 직접 출석해 “보조금 받은 단체들이 보조금 가지고 어떻게 그동안 썼는지 다 까발려졌을 때 한번 잘 생각해보라”고 경고했다.

20대 국회 임기 만료를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문희상 국회의장(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유인태 사무총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영국형 외부감시 모델도 대안, "관행 바꿔야"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민주당과 통합당 다선 의원들이 회장을 맡고 있는 단체에는 오래된 관행이 있다”며 “사무처에서 규정도 정비하고 엄밀하게 하겠다고 하니 반발이 많다. 사무처 직원들이 칼자루를 쥐고 덤비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의원이 아닌 외부 기관이 국회 예산을 심의하는 구조가 대안으로 제기된다. 영국은 의회 통제를 받지 않는 의회독립기준청(Independent Parliament Standard Authority·IPSA)을 통해 세비를 결정한다. 하원 의원들이 사용하는 비용 내역은 2달에 1번씩 공개하고, 회계연도가 마무리 될 때는 보고서를 발간해 국회 예산을 투명하게 관리한다. 서 연구원은 “외부자문기구를 구성해 보조금 예산의 적정성을 감시하는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며 “21대 국회가 새로 시작하는 만큼 보조금과 관련해 잘못된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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