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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국가채무총량 관리할 '재정건전화법' 차기 국회서 꼭 만들어야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

미중 패권전쟁, 무역 이어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것

원격의료 등 기존 틀에 억지로 맞추면 기형적으로 변해

정책, 가성비 따져 정교히 다듬고 새 판 짜는 변화 필요

180석 진보여당 지속가능경제 위해 노동개혁 나서야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가 27일 서울 종로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교수는 “차기 국회에서 재정건전화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욱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에 미국과 중국 간 헤게모니 싸움이 이어지며 경제적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한국경제학회장과 통계청장을 지낸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경제정책의 ‘가성비’를 고민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코로나19를 정책 변화의 촉매제로 사용해 판을 다시 깔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교수는 다만 위기극복을 위해 재정이 집중 투입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20대 국회 때 처리하지 못한 재정건전화법을 차기 국회에서는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4·15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을 맡았던 이 교수는 “통합당의 패배는 리더십과 영입 인재의 관리 부족, 조직 와해 때문”이라며 “자신의 정치적 생존이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를 27일 종로에서 만나 경제정책 방향과 차기 국회의 과제 등에 대해 들어봤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충격의 장기화를 점치는 시각이 늘고 있다.

△이번 쇼크는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클 것이다. 전 세계가 전반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쇼크가 과거와 다른 점은 소비활동이 크게 위축된 것이다. 투자가 꺾이면 다시 창출하면 되지만 소비는 안 하면 날아간다. 사람들의 심리적 여파가 연말까지 갈 것이다. 전염병 전후 심리상태가 다르다. 코로나19가 끝나도 충격은 오래갈 것이다. 확진자는 줄었지만 경제 여파는 이제 시작이다. 순차적으로 올 것이다. 지금은 소비 충격이지만 고용 충격이 나타날 것이다. 기업들이 실적악화로 해고하면 소비자는 소비를 다시 줄일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93개국 중 154개국의 마이너스 성장을 전망했다. 개발도상국보다 선진국의 충격이 오래갈 것 같다. 개발도상국은 1~2년, 선진국은 2~3년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덜했지만 수출에서 충격을 받을 것이다. 2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왔을 때의 쇼크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격화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는데.

△패권 다툼으로 갈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끝까지 정치적 생존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경제 문제에서 굉장한 압박감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까지 더 강하게 나가고 극단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무역전쟁은 보여주기이고 기술전쟁에 이어 궁극적으로는 금융전쟁이 이어질 것이다. 중국은 외환시장만 개방하면 다 연다. 금융전쟁은 오래갈 싸움이다. 다만 중국이 국채 매도 등의 수준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다. 미국 대선이 끝나도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중 갈등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코로나19와 미중 냉전이 겹쳐 우리로서는 대처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주력산업들은 구조적으로 떨어지는 추세였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1·4분기 수출은 반도체 덕분에 괜찮은 수준처럼 보인 것이다. 이를 잘 돌아봐야 한다. 그나마 대기업은 미중 갈등에 대해 3년 가까이 준비했다. 하지만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은 준비하지 못해 큰 타격을 받을 것 같다. 기업들은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데 정부에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0%에서 -1% 사이가 될 것으로 본다. 코로나19가 조기 진정돼도 그 정도는 갈 것이다. 정부 정책의 실질적 효과가 크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고용 쪽에 중심을 둬야 한다. 고용지원금을 늘려 기업이 일자리를 유지하게 하고 금융이나 세제 지원을 해주면 정책의 가성비를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부분들을 바로잡지 않고 재정만 늘린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확장재정으로 국가채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건전재정을 제대로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과거에는 그나마 지출이 많아도 성장을 더 해 버텼다. 실질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데 그렇게 가면 안 된다. 국가채무가 많은 국가 중 상당수는 발권력을 갖추는 등 우리와 여건이 달라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동안 재정전략회의를 하면서 건전재정을 위한 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누차 얘기했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재정건전성 확보’를 추상적으로 규정할 뿐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당시인 지난 2016년 기획재정부가 국가채무의 총량을 관리하는 ‘재정건전화법’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20대 국회에서 얘기도 못하고 끝났다. 너무 아쉽다.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에서 채무비율 목표를 세웠지만 지킨 적이 없고 이제는 맞추겠다는 얘기 자체가 없다. 사실상 사문화한 것이다. 차기 국회에서는 재정건전화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

-정책 기조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 당시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개혁을 추진했는데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고 했다. 그것이 노동개혁이었다. 결국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되레 후퇴하고 있다. 노동개혁은 기업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경제를 살리고 노동자를 살리는 길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고용시장에서 필요한 것은 유연성이다. 노동개혁은 해고를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에 맞춰 노동의 구조를 다양화하는 개념이다.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는데 기존 틀 안에서는 보호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은 낡은 틀이다. 180석의 국회 의석을 가진 거대 진보정권이 노동개혁을 이야기해야 한다.

-코로나19로 기술적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어떤 정책적 변화가 필요한가.



△인터넷 강의에서도 우리가 많이 뒤처져 있는데 이번에 기술적 변화가 많이 앞당겨질 것 같다. 사람들이 플랫폼 경제에 대해 느끼게 됐고 빨리 바뀔 것이다. 원격의료 등도 기존의 틀에 구겨 넣으면 기형적 모습이 나타난다. 코로나 충격을 계기로 판을 새로 짠다는 생각을 갖고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그러면 현 정부는 두고두고 칭찬을 받을 것이다. 물론 규제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저항도 격렬하겠지만 충격이 왔을 때 빨리 바꿔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 안에서 놀게 한다는 것은 한가한 얘기다.

-또 다른 패러다임 변화가 경제 민족주의다. 리쇼어링(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회귀)이 대안으로 떠오르는데.

△안타까운 점은 리쇼어링에 대한 분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공장을 왜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미얀마로 옮기는지 데이터를 봐야 하는데 관계기관에서 주지 않는다. 원가절감을 위해서라면 노동비용을 얼마나 줄였는지 등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알 수 없다. 15년 동안 리쇼어링을 말하면서 실적은 형편없었다. 정부가 리쇼어링에 대해 말은 그럴싸하게 하는데 정책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기업이 들어오려 해도 노조가 목소리를 높이면 막아주지 못한다. 세제혜택을 주려 하면 다른 쪽에 분담금 같은 비용이 또 발생한다. 리쇼어링을 위한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기업이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다. 리쇼어링을 원하면 그간 왜 실패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움직인다. 노동비용 조금 싸게 해준다고 기업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결국 제도와 환경이 문제인데 지역과 이해집단의 논리 등 때문에 쉽지 않다.

△20년 전만 해도 정부부처들끼리 협의했는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고 조정작업을 국회에서 한다. 국회가 전문역량을 가져야 하는데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가고 있다.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 생존만 생각하니 포퓰리즘이 나타난다.

-임기 2년이 채 남지 않은 현 정부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청와대에 거시경제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큰 그림을 보고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그런 고민이 적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는데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공부하지 않는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기업의 얘기를 귀담아들어야 하는데 듣기 좋은 얘기만 듣는다. 경제를 분석하려면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정교하게 해야 한다. 실증기반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돈이 어떻게 가서 어떻게 쓰였는지 가성비를 고민해야 한다. (정책의) 가성비는 기본인데 그걸 따지지 않는다. 재난지원금에 따른 경제적 효과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는다.

-4·15총선에서 통합당 공천관리위원을 맡았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공천 자체는 80점 이상 줄 수 있다. 다만 현행 공천제도는 적절하지 않다. 여론조사로 후보를 정하는데 조사의 함정이 정말 많다. 지금의 공천제도로는 실력 있고 올바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들어갈 정치판을 만들 수 없다. 밖에 알려진 것과 당 내부는 많이 달랐다. 세부전략도 없었고 과거에 대한 자기반성도 없었다. 선관위 데이터 말고 통합당의 자체적인 데이터가 하나도 없었다.

-통합당의 실질적 패배 원인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가장 큰 원인은 리더십 부족이다. 당 지도부 옆에 있는 사람들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이를 바탕으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두번째는 인재를 영입해놓고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 결정적인 것은 조직이 엄청나게 망가진 점이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말하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 깊이 반성해야 한다. /김영기 논설위원 young@sedaily.com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휴스턴대 경제학과 조교수를 거쳐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재정연구센터 소장과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등을 지냈다. 첫 민간 출신 통계청장과 한국경제학회의 첫 여성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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