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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하이텔' 접속하던 추억의 PC, 초연결 시대 중심에 서다

<32> 컴퓨터

IBM PC 1980년대초부터 대중화

단순 문서편집기·게임기에 불과하다

PC통신 이뤄지며 바깥세상과 연결

1990년대 '정보화 물결' 최전선에

정보기술 발전과 함께 성능 고도화

미래 디지털 혁신서 역할에 주목

어린이들이 구형 컴퓨터를 사용해보고 있다./연합뉴스




우리 집에 처음으로 ‘컴퓨터’라는 물건이 들어온 것은 지난 1989년에서 199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의 일이었다. 자세한 정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 회사에 약간 저렴한 가격에 컴퓨터를 파는 외판원이 들렀던 모양이다. 아마도 “요즘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컴퓨터 한 대 정도는 들이셔야죠” 정도의 멘트를 날렸을 것이다. 회사 직원들을 모아놓고 여럿이 구매하면 추가 할인 혜택이 있을 수 있다고 유혹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덜컥 사겠다고 나서는 몇몇 동료들의 분위기에 휩쓸렸을까. 고민 끝에 마침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이 있으니 앞으로 도래할 미래사회에서의 적응을 돕기 위해서라도 이 정도 투자는 할 만하다고 생각하셨으리라.

며칠 후 집으로 컴퓨터가 배달됐다. ‘16비트’ 또는 ‘286’이라고 불렸던 IBM 호환 모델이었다. 미국 IBM에서 개인용 컴퓨터(PC)로 1984년에 처음 만든 구조를 본떠 한국의 삼보컴퓨터가 만든 제품이었다. 당시 IBM AT 컴퓨터는 인텔 80286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장착했고, 16MB의 메모리, 20MB를 담을 수 있는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그리고 두 개의 5.25인치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가 있었다. 현재 기준으로 생각하면 볼품없는 스펙이지만 당시로써는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집약이었다. IBM의 286 컴퓨터는 1980년대 중반 이후 PC의 대중화를 이끌었지만 미국 반독점 규제 정책으로 설계 구조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기회를 대만의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금세 파고들었다. 대만산 ‘IBM 호환 모델’들은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품질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해나갔다. 삼보컴퓨터를 비롯한 국내 컴퓨터 업체들은 국내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치열한 영업활동을 벌였고 그 와중에 우리 집에까지 컴퓨터가 들어오게 됐던 것이다.

설치를 마치고 컴퓨터를 켜자 한참을 웅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더니 마침내 모니터에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검은색 바탕에 초록색 글씨였다. 이해할 수 없는 영어 단어가 나열되고 가장 밑에 ‘C:\>’라고 표시됐다. 그리고 그 옆에 커서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내가 컴퓨터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당시 내가 보유한 컴퓨터에 대한 지식은 중학교 1학년 때 동네 컴퓨터 학원에서 ‘애플II’ 컴퓨터로 베이식(BASIC) 언어를 몇 개월 동안 배운 것이 전부였다. 몇 가지 간단한 명령어를 배워 1부터 100까지 더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든지 네 자리의 무작위 숫자를 생성한 후 맞추는 게임을 만드는 정도였다. 하지만 도스(MS-DOS) 기반의 운영체제는 낯설었다. 결국 컴퓨터에 경험이 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수소문 끝에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프트웨어 없는 컴퓨터는 그저 깡통에 불과했다. 소프트웨어는 동네 컴퓨터 가게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 무렵 꽤 성행했던 컴퓨터 가게에서는 컴퓨터 관련 소모품을 판매하기도 했지만 주로 각종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복제해줬다. 비닐 파일 폴더 안에는 가게에서 보유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목록이 있었다. 선택을 마치면 아저씨가 해당 프로그램이 담긴 5.25인치 플로피디스크를 컴퓨터에 넣고 빈 플로피디스크로 복사했다. 한 장 복사하는 데 몇 분 정도 걸렸다. 간단한 프로그램은 한 장으로 충분했지만 복잡해지면 여러 장의 플로피디스크에 나눠 담아야 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각종 컴퓨터 게임을 접하게 됐다. 오락실에서 하는 게임도 재미있었지만 집에서 컴퓨터로 하는 게임은 또 색다른 맛이 있었다. 컴퓨터 게임을 통해 컴퓨터 사용법에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이때까지의 컴퓨터는 그저 게임기이자 문서편집기에 불과했다. 외부의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할 방법은 플로피디스크에 프로그램을 복사해 구동하는 것뿐이었다. 내게 컴퓨터의 의미가 통신기기로 바뀌게 된 것은 대학 입학 후 PC통신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수소문 끝에 ‘모뎀’ 카드를 샀다. 이것을 컴퓨터에 설치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본체 뒷면의 나사를 풀고 기판에 적절한 위치를 찾아 카드를 꽂고 긴 전화선을 구해 연결했다. 모뎀을 통해 나의 컴퓨터는 바깥세상과 연결됐다. 컴퓨터에 연결된 전화선을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한동안 밤마다 ‘하이텔’에 접속해 시간을 보냈다. 게시판에서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거나 채팅방에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다가 10만원이 넘는 전화요금이 나와 어머니에게 혼나기까지 했다. 이 무렵 PC통신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01410이라는 접속번호와 “삐~삐~” 하는 접속음 소리를 기억할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 초중반에 컴퓨터와 그것의 연결망은 서서히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다. 대학 입학 초기에는 컴퓨터 문서편집기를 이용해 리포트를 작성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1학년 때 들었던 ‘동양미술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에서는 심지어 기말 리포트를 200자 원고지에 손으로 작성한 후 노끈으로 묶어 제출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2~3학년이 되자 프린터로 인쇄한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프린터도 처음에는 소음이 심한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를 쓰다가 잉크젯 프린터가 나왔고 곧 레이저 프린터 시대가 열렸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되자 인터넷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가 이메일을 나타내는 표기라는 것을, www가 ‘월드와이드웹’의 약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운영하는 핫메일(hotmail) 서비스를 통해 첫 이메일 주소를 만든 것이 이때였다.

이렇듯 198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 동안 한국에서 내가 경험했던 컴퓨터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이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수준을 갖춘 세계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컴퓨터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기술의 끊임없는 발전에 힘입은 것이었다. 본 연재 14회(2019년 11월16일자 10면 참조)에서 언급했듯이 매년(또는 18개월마다) 용량이 배가된다는 ‘무어의 법칙’에 따라 컴퓨터 칩은 지수적인 성능 향상을 이뤘다. 그것이 1980년대 중반 정도에 개인용 컴퓨터를 가능하게 했다. 이후의 컴퓨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성능이 높아지고 무게는 가벼워졌으며 가격은 저렴해졌다. 나아가 1970년대 초 과학자들의 연구망으로 시작된 인터넷은 1990년대 들어 세계 각국을 연결하는 통신망으로 성장해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상업적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바야흐로 ‘정보화’의 물결이 정신없이 밀어닥친 것이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훌륭한 디지털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됐다. 전 국민이 하나씩 들고 다닌다고 봐도 무방한 스마트폰은 불과 30년 전의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성능을 갖고 있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에서 발표한 ‘한국형 뉴딜 정책’에 따르면 디지털 인프라를 더욱 고도화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첨단 테크놀로지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기존의 방향을 유지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미래의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가져올 편리함과 효율성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보기술의 어두운 측면에 대해 우려감이 들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지난 사반세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보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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