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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32조짜리 개미’와 동행하라

한영일 증권부장

‘동학개미’ 주식계좌 올 140만개 폭증

증권사 1분기 거래수수료 4,000억 늘어

코로나발 직격탄 맞은 수익 방어 큰 역할

상품 ‘팔면 끝’ 관행 땐 또다시 자금 썰물

‘고객수익=회사 성장’ 새 문화 만들어야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 한다. 몇 달 전만 해도 인공지능(AI)이 마치 세상을 지배할 것처럼 왁자지껄했는데 선진국 병원에서조차 치료를 못 받아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올해는 바닥을 찍고 일어서리라 기대했던 한국 경제는 새해의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주저앉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가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사회적 공생의 관계이자 더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전 지구적 카오스에서 자본시장도 가보지 않은 길에 내몰렸다. 증시는 지난 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에 버금가는 대폭락을 경험했고 우리 상상력을 무력화한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는 투자자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동네 골목상권부터 첨단 전자산업까지 모든 경제 주체가 치명상을 입었고 의미 있는 회복은 아직 안갯속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잔치를 벌였던 국내 증권사들이 받은 타격은 더욱 크다. 1·4분기 실적은 반 토막을 넘어 적자로 돌아선 회사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혼돈의 시기에 ‘동학개미’가 등장했다. 오랫동안 국내 주식시장에 발길을 끊고 오매불망 부동산만 바라봤던 개인들이 뭉칫돈을 싸 들고 여의도 증권가로 쏟아져 들어왔다. 올 들어 새로 개설된 주식계좌만 140만개에 달하고 개인이 순매수한 금액은 무려 32조원에 이른다. 외국인과 기관이 34조원어치를 팔아 치우는 사이 개인들이 증시를 떠받치며 코스피를 결국 2,000포인트까지 되돌려놓은 셈이다. 여하튼 개미의 공(功)이다. 특히 코로나19가 불러온 충격으로 증권사들은 투자은행(IB)이나 자기자본투자(PI) 등에서 큰 손실을 입었지만 개인의 주식거래가 폭발하면서 손실 폭을 그나마 줄였다. 실제로 국내 주요 10개 증권사들의 1·4분기 주식거래 수수료만 해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00억원이나 늘면서 1조원에 달했다. 동학개미의 등장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느새인가 한쪽으로 떠밀려났던 개인투자자의 존재감을 업계에 강하게 각인시켰다.

국내 증권사의 ‘포스트 코로나’ 고민은 여기서 시작돼야 한다. 투자시장의 뿌리가 무엇이고 자본시장이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라임펀드 사태와 파생결합펀드(DLF) 사건 등을 볼 때 고객은 손실을 보더라도 금융투자회사들은 판매나 운용수수료만 또박또박 챙기지 않았는지. 금융투자업계는 올해 1·4분기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분쟁조정신청이 654건으로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는 점을 뼛속 깊이 새겨봐야 한다.



코로나19는 국내 주식시장에 새로운 물줄기를 끌어왔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이를 위해 증권사와 금융정책 당국은 주식은 물론이고 펀드와 파생상품 등 고객의 수익을 좀 더 안정적으로 높일 수 있는 투자상품이나 합리적인 수수료 체계를 내놓아야 한다. 금융회사들은 ‘일단 팔고 보자’는 식의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궁극적으로 고객 수익률과 회사의 매출이 함께 갈 수 있는 새로운 투자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금융당국도 이를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근본적인 투자문화에 대한 변화가 나오지 않는다면 ‘32조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증시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개인의 자산을 주식시장으로 유입시키고 머물게 하는 것은 금융투자시장의 발전은 물론 부동산에만 치우친 국가 경제 및 가계 자산의 불균형 추를 바로잡는 효과도 크다. 동학개미의 등장이 ‘기울어진 자산시장’을 바로 잡는 트리거가 되도록 변환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결국 금융투자회사와 정부의 몫이다. 개인투자자들에게 그저 우량주에 장기투자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해서 증권사와 금융 당국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증권사들은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다. 고객과 함께할 것인지 아니면 나 홀로 성장할 것인지. hanu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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