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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 10대 디지털 성범죄 느는데...'n번방' 밖에 머문 성교육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 5년째 그대로

성폭력·데이트폭력 대처법만 교육

신종 SNS 범죄 관련된 내용은 없어

英은 '그루밍' 반영 가이드라인 개정

입시 위주 탓에 교육마저도 형식적

학생들에 자료 나눠주고 "읽어보라"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운영자 조주빈(25·구속기소)을 도와 아동 성착취물의 제작·유포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부따(대화명)’ 강훈(18)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을 나서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서울경제DB




10대 청소년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물을 공유한 ‘n번방’ 사건에 대거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학교 성교육 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보유하면서 SNS를 이용한 성범죄도 해마다 늘고 있는데 여전히 성교육은 신체 변화 설명, 데이트폭력 및 성폭력 대처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교육 당국이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유치원 및 초중고교는 지난 2015년 교육부가 보급한 ‘성교육 표준안’에 근거해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교육은 1980년대 시작됐지만 학교마다 성교육 주체가 제각각이고 체계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교육부는 이러한 지적을 수렴해 유치원에서부터 초중고에 이르기까지 학교급별 연계 성교육을 실시하겠다며 6억원을 들여 성교육 표준안을 만들었다. 또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이를 참고해 관할 학교에 성교육 지침을 내리도록 했다.

하지만 성교육 표준안은 ‘n번방’ 사건처럼 SNS 성범죄에 노출된 학생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다. 성폭력·성매매·데이트폭력 등 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범죄 위주로 소개할 뿐 최근 온라인에서 성행하는 음란물 게시 및 공유 범죄에서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교육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나마 초등 성교육 표준안에 SNS를 통한 성적 피해 예방 교육이 안내돼 있지만 중·고등 성교육 표준안에는 포괄적인 음란물 대처만 있을 뿐 ‘섹트(음란물로 도배된 트위터)’ ‘일탈계(신체 일부분을 촬영해 공유하는 SNS)’ 등 최근 문제가 된 SNS 범죄 예방 안내가 없다.



특히 SNS 범죄 가해 예방 교육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SNS에서 낯선 인물의 대화 제의에 불응하고 대중매체 속 음란물 시청을 피해야 한다는 피해 예방 교육이 있을 뿐 SNS 성 착취 범죄에 어떻게 가담하는지, 가담하면 어떤 처벌이 내려지는지 구체적인 안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교육 표준안은 2015년을 마지막으로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며 “최근 심각한 문제가 되는 디지털 성폭력 등에 대한 내용은 표준안에 전혀 담겨 있지 않아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가 지난해 그루밍(길들이기를 통한 성범죄) 등 최신 성범죄를 반영한 개정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과 달리 우리나라 성교육 표준안 내용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성교육 표준안은 디지털 성범죄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 외에도 성차별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대처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교육부가 교사 참고용으로 배포한 중학교 성교육 워크북을 보면 남자친구가 신체 접촉을 원할 경우 여학생이 거절하는 방법을 역할극 대본을 통해 찾아보도록 안내하고 있다. 또 야한 꿈을 꾸고 하루 종일 꿈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상황을 사례로 들며 청소년기 성 욕구 조절이 필요한 이유를 찾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초등 1~2학년에게 여성의 바른 옷차림은 치마라고 가르치는 등 성교육 표준안이 학생들에게 잘못된 성 정체성을 주입해 성범죄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러한 실태는 2018년 말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한국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여성은 외모를, 남성은 재력을 갖춰야 한다고 배우고 있다”고 보도돼 국제적 망신거리가 되기도 했다.



교육부의 중학교 성교육 워크북 내용 중 일부. /자료=교육부


2018년 3월 김상곤 당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해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와 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관계부처 간 논의를 거쳐 단순히 보건 차원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과 양성평등, 민주시민교육 중심 등 새로운 관점에서 재구성한 성교육 표준안을 2019년 상반기에 내놓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교육부가 성교육 표준안 개선을 위한 전문가 정책연구를 세 차례 발주했으나 모두 유찰되는 등 진척은 없는 상태다.

성교육 표준안이 논란에 휩싸인 뒤로 성교육 참고자료 배포 등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교육청과 학교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에서 학생건강정보센터를 통해 성교육 자료를 올리고 있는데 성교육 표준안 논란이 계속되면서 2018년부터 교육자료가 올라오지 않고 있다”면서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어 성교육에 어려움이 있다는 학교들이 많다”고 말했다.

학교보건법과 교육부 지침에 따라 학년별로 연간 15시간씩(성폭력 예방교육 3시간 포함) 성교육이 실시되기는 하지만 내실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 교과를 선택하지 않은 학교라면 생물, 체육, 창의적체험활동(창체) 수업에서 성교육이 이뤄지기 때문에 전문교사가 아닌 일반교사가 가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창체 시간에 학생들에게 성교육 예방자료를 나눠주고 읽는 것으로 교육을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수업이 입시 위주인 탓에 성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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