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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제로전투기의 허와 실

1939년 '약점투성이' 신형기

일본의 A6M 전투기. /위키피디아




1939년 4월1일 일본 기후현 가카미가하라 비행장. 미쓰비시 나고야 공장에서 2주 전 완성된 신형기가 시험비행에 나섰다. 설계를 담당한 호리코시 지로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지상에는 바람이 거의 없고 아지랑이가 보인다. 새로운 전투기의 앞날을 축복하듯이.’ 탑재할 예정이던 970마력짜리 엔진의 신뢰성이 부족해 시제 1·2호기는 760마력 엔진을 달았으나 기대 이상의 성능을 냈다. 급강하 시험에서 기체가 부서져 조종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어도 일본은 양산과 실전배치를 밀고 나갔다.

배치 연도인 1940년이 일본 기원 2600년이어서 ‘영식 전투기(레이센·제로센)’로 불리는 미쓰비시 A6M 전투기(사진)는 데뷔전에서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1940년 7월 제로기 12대가 한 대의 손실도 없이 중국(국부군) 공군의 전투기 23대를 떨궜다. 진주만 기습을 포함한 태평양전쟁 초기에도 제로기는 명성을 이어갔다. 장거리 항속거리와 빠른 속도, 짧은 선회 반경으로 미 육군과 해군 항공대의 구형기와 아시아에 배치된 영국제 스핏파이어 전투기(초기형)를 간단하게 눌렀다. 미군은 1대1 공중전을 피하라는 긴급 지침을 조종사들에게 내렸다. 바로 여기까지가 제로기의 전성기.



1942년 말부터 미 해군에 신예기가 공급되고 미 육군도 유럽 전선에 우선 배치했던 신형 전투기(P-38)를 태평양으로 돌리며 전투 기간 공중전 우위가 뒤집혔다. 결정적으로 개펄에 불시착한 제로기를 획득한 미군은 장점보다 약점이 많은 전투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군은 제로기가 2,000마력 이상의 엔진을 달았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1,000마력에도 못 미쳤다. 일본이 비상식적으로 경량화를 달성해 비행성능을 끌어올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종석 방탄판도, 연료실 보호막도 없고 무전기의 성능이 나빠 편대비행마저 수신호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군은 이런 분석까지 남겼다. ‘군용기로 부적합한 기체다. 화려한 민간 곡예 비행기에 기관포를 달았을 뿐이다.’ 영국이 성능미달 때문에 개발을 포기한 글로스터 F.5/34의 무단 복제품이라는 혹평도 나왔다. 적의 단점을 완전히 파악한 미군은 마리아나 해전에서는 마치 ‘칠면조 사냥’하듯 제로기를 떨어뜨렸다. 결정적으로 일본은 베테랑 조종사들을 소모전에 내몰아 잃어버렸다. 숙련공들을 마구 징집해 후기형의 성능이 초중기형보다 떨어지는 촌극도 벌어졌다. 요즘도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인들은 제로기를 ‘세계 최강 일본군’의 상징으로 꼽는다. 정작 미군은 ‘외화내빈’의 전형으로 평가했건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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