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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 봉준호답다는 것은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포함 4관왕 올라

봉준호 영화세계 TMI 5가지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작품상을 수상했다. /연합뉴스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겼다”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봉준호 감독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떨렸다. 이때껏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여유가 묻어났던 수상소감과 분위기부터 달랐다. 봉 감독은 그가 동경하는 마틴 스콜세지를 언급하며, 그의 영화 세계에 깊게 영향 받았다고 말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등 아카데미 4관왕 달성을 계기로 봉 감독의 영화적 창의성에 영향을 미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본다.

◇ 만화덕후 VS 영화덕후



봉준호 감독이 연세대 대학시절 학보에 연재했던 4컷 만화 ‘연돌이와 세순이’ /사진제공=연세춘추


봉 감독은 만화광이었다. 주로 홍대 근처에 위치한 만화책 대여방 ‘홍대 툰크’의 단골이었다. 연세대 사회학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 시절부터 각본을 쓰다 막힐 때마다 이 만화방을 찾았다. 영화 ‘살인의 추억’ 각본을 쓰다가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는 영국의 악명높은 살인범 잭 더 리퍼 이야기를 다룬 엘런 무어의 만화 ‘프롬 헬’을 읽었다.

만화를 잘 그리기도 했다. 봉 감독은 연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 학보 ‘연세춘추’에 4컷 만화 ‘연돌이와 세순이’, 만평 ‘춘추만평’을 연재하며 날카로운 풍자를 곁들여 인기를 얻었다. 이 활동은 대학에 영화 동아리 ‘노란 문’을 만들고 영화를 찍은 것만큼이나 그에게 대학 시절 애정을 가졌던 기억으로 남았다. 이후에 감독이 되고 나서는 만화 그리던 실력을 콘티에 쏟아부어 ‘고퀄’ 콘티가 탄생했다. 카메라 감독도 콘티만 보면 카메라의 시선과 인물의 동선을 모두 읽을 수 있을 정도여서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명성에 한 몫을 했다고 한다.

◇ 잠실의 풍경

봉 감독이 고등학교 시절 잠실 한강변에서 본 검은 괴물을 영화 ‘괴물(2006)’로 형상화할 당시 감독이 그린 괴물 /내셔널지오그래픽 화면 캡처


대구에서 태어난 뒤 중학교 때 서울로 이사를 온 봉 감독. 중학생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다는 그가 청소년기 서울에서 보고 경험한 것이 영화적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등학교 시절 한강 변에서 친구와 걷다가 검은 괴물체가 잠실대교 교각을 타고 오르는 모습을 본 뒤 남들이 믿던 말든 진짜 한강 아래에 있는 괴생명체의 존재를 공상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 2월 서울 용산 미8군 기지에서 독극 물질인 포름알데히드 220리터를 한강에 방류하게 한 맥팔랜드 사건이 알려져 영화 ‘괴물(2006)’의 서사적 단초가 될 때까지 그 장면은 영화적 영감으로 남아 있었다.

그의 영화에는 일관되게 계단과 지하실이라는 공간이 나타나 수직적 이미지를 연출한다. ‘기생충’에서 가정부 문광이 자신의 남편을 숨겨놓은 지하실이나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서 형사들이 백광호(박노식)를 감금 조사하던 지하실이 대표적이다. 지하실 이미지는 사실 데뷔작인 ‘지리멸렬(1994)’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감독은 자신이 다녔던 잠실고등학교에 있던 지하실의 기억이 영감을 줬다고 설명했다.

◇ 삑사리인가 디테일인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주인공 두만(송강호)의 취재 수첩으로 쓰였던 1986년의 농협 다이어리는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의 대표적 소품으로 꼽힌다. /사진제공=싸이더스


봉 감독의 영화에는 결정적인 순간 주인공의 사소한 헛발질이나 미끄러짐으로 이야기 전개가 극적으로 달라지는 장면이 종종 등장해 긴장감을 준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문광(이정은) 부부가 수세에 몰려 있다가 몰래 지하실 계단에 숨어있던 기택(송강호)이 실수로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지면서 두 가족의 상황이 역전된다. 이러한 ‘삑사리’(당구에서 큐가 미끄러져 공을 헛치는 경우로 사소한 실수로 일을 그르치는 상황)는 그간 봉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지뢰처럼 깔려있는 유머 코드로 읽혔지만 봉 감독만의 예술론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봉 감독이 영화 ‘괴물(2006)’ 개봉 후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장면을 두고 “남일(박해일)이 괴물에게 화염병을 던졌는데 삑사리가 나면서”라고 언급하자 봉 감독의 예술을 ‘삑사리의 예술(L‘art du Piksari)’로 해석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봉 감독과 작업해 본 적이 있는 영화인들은 ‘삑사리’ 역시 봉 감독의 머릿속에서 정교하게 계산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화면 안에 배치되는 소품 등의 모든 요소를 꼼꼼하게 챙기고, 스토리 측면에서 사소한 부분까지 치밀하게 복선을 배치한다. ‘살인의 추억’부터 함께 작업한 류성희 미술감독은 “감독님이 두만(송강호)이 들고 다니는 취재수첩으로 당시에 보급되던 농협 다이어리를 써야만 한다고 주장하셔서 진땀을 뺐다”며 ‘봉테일’의 치밀함을 설명했다. 하지만 ‘봉테일’은 꼼꼼함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하다. 영화 ‘마더(2009)의 엄마(김혜자)가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장면에서 그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컴퓨터 그래픽을 쓰지 않고, 둘째 실제 달리는 버스를 촬영하고, 셋째 태양광선이 버스를 수직으로 관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버스와 촬영차량이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도로, 태양광선이 버스를 수직으로 관통할 때의 정확한 시점 등 제약조건에도 봉 감독이 이미 현장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디테일함이 좋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 송강호와 김뢰하

영화 괴물(2006)에서 무능한 정부를 풍자하기 위해 등장했던 방역 대원으로 열연한 김뢰하. 사실 괴물은 그가 봉 감독과 다섯번 째로 함께 한 작품이었다. /연합뉴스


많은 이들이 봉준호를 떠올리면 동시에 송강호가 연상될 정도로 봉 감독과 송강호 배우 사이에는 끈끈한 파트너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봉 감독은 영화 ‘모텔 선인장(1994)’ 조감독 시절 오디션 장에서 신인 배우 송강호의 가능성을 한눈에 알아봤다. 송강호는 그 오디션에서 떨어졌지만 봉 감독은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이번엔 맞는 배역이 없어서 작업을 못하지만 언젠가 꼭 좋은 기회로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친절한 불합격 메시지 같지만 송강호는 봉 감독의 진심을 느꼈다. 이 사건은 무명 감독의 첫 상업영화에 ‘쉬리’,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로 흥행 보증 수표가 된 배우가 합류해 최고의 파트너가 됐다. ‘살인의 추억’의 명장면이 된 두만(송강호)의 마지막 한마디 “밥은 먹고 다니냐” 역시 봉 감독이 촬영 3일 전 “두만이 이 상황에서 뭔가 말을 할 것 같아요”라고 언질을 하자 송강호가 머리를 꽁꽁 싸매 만든 대사다.

사실 송강호보다 먼저 봉 감독을 알아본 배우는 김뢰하다. 봉 감독은 대학 시절 첫 단편 영화 ‘백색인’을 연출하며 연극계의 무명 배우였던 김뢰하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 시절 졸업 작품인 ‘지리멸렬’, ‘플란다스의 개’ 등 봉 감독이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 늘 섭외 1순위 배우가 됐다. 봉 감독이 이름을 알리게 된 영화 ‘살인의 추억’ 원작 ‘날 보러와요’를 소개해준 것도 김뢰하였고, 이 영화에서 형사 조용구로 출연해 강렬한 캐릭터로 남았다.

◇ 천재와 공포감

한국 영화계의 세기의 라이벌로 꼽히는 봉준호(왼쪽) 감독과 박찬욱 감독 /연합뉴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감독이자 가장 변화무쌍한 천재”(박찬욱 감독)

“항상 볼 때마다 이 사람은 정말 천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류승완 감독)

동 시대의 감독들은 봉 감독을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로 평가하며 존경한다. 과연 이러한 천재에게는 어떤 공포감이 있을까 싶지만 머쓱해 하며 영화를 시작한 뒤 하루도 두려움 없이 보낸 적이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을 때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고 농담을 하는 그에게는 영화에 대한 두려움 외에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큰 동력이다.

“저 같은 경우는 공포감이 많은 편이에요 특히나 사회나 세상에 대한 불안, 공포감이 많이 있죠. 무언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세상이 나빠져서 나도 그 구덩이로 빠져들면 어떡하나 그런 불안감. 그걸 잘 표현하는 데 자신이 있기 때문에 더 그런 쪽 느낌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공포감은 감독 봉준호를 끊임없이 영화적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었고, 봉준호의 영화 세계를 더욱 봉준호답게 만들었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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