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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옥스퍼드대 습격 사건

1355년 타운과 가운의 갈등

1907년 엽서에 새겨진 옥스퍼드대 습격 사건/위키피디아




1355년 2월10일 영국 옥스퍼드. 성 스콜라스티카 축일인 이날 초저녁부터 술을 마신 대학생 둘이 선술집 주인을 불렀다. 학교가 가까워 자주 들렀지만 학생들은 평소에도 물을 섞은 듯한 와인과 바가지요금에 불만을 갖고 있던 터. 유난히 술맛이 떨어진다고 불평하는 학생들과 선술집 주인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몇 차례 험한 말이 오간 뒤 학생 하나가 주인에게 잔을 집어 던졌다(나무 와인 병으로 머리를 내리쳤다는 주장도 있다). 열 받은 주인은 교회 종을 쳐서 시장과 마을 주민에게 알렸다. 학생들도 대학으로 돌아와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양쪽은 활로 무장한 채 대치했어도 이날 밤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없었다. 날이 샌 뒤 시장은 옥스퍼드대 총장에게 두 학생 처벌과 사과,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총장은 사태를 파악하겠다면서도 ‘대학은 치외법권이니 시장이나 시민들이 처벌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잔뜩 약이 오른 주민들은 사람들을 모았다. 주민 5,000여명 중 2,000여명이 몰려 온다는 소식에 학생들도 교내 종을 쳐서 동료를 모았으니 고작 200여명. 어둠과 함께 교내에 진입한 시민들은 강의동과 기숙사 등 5개 건물이 때려 부쉈다.



마침 근처에 있던 국왕 에드워드 3세의 중지 명령이 하달된 뒤에도 시민들은 분노를 거침없이 내뿜었다. 학생과 교수를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팼다. 사흘간 이어진 폭동에서 학생 63여명이 죽었다. 시민들도 3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태를 진정시킨 것은 국왕 에드워드 3세의 분노.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을 먼저 시작했던 그는 이때도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시장을 감옥에 보내되 시민들은 처벌하지 않았다. 단, 해마다 2월10일이면 대학교회에서 열리는 미사에 시장이 참석해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학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옥스퍼드 시장의 연례 회개는 470년간 이어졌다. 1955년 대학과 시 당국은 폭동 600주년을 맞은 1955년에야 화해의 악수를 나눴다. 성 스콜라스티카 축일은 ‘마을과 학교의 대립처럼 심한 갈등’이라는 의미의 영어 상용구 ‘town & gown’에 흔적이 남았을 뿐이다. 형태만 변했을 뿐 오늘날에도 이런 갈등이 적지 않다. 군부대 장병들과 인근 주민 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제 역할과 사명을 잊은 ‘가운(gown)’도 우리 사회 저변에 널렸다. 졸업식이면 가운을 착용하는 교수부터 재판에서 가운(법복)을 상용하는 판검사, 언제나 가운을 걸치는 의사들까지. 특권의식이 사회와 나라를 좀 먹는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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