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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한국전쟁 후 재건에 최다 기여…구호활동 사료 확보

가톨릭 구제회 통해 현물·정착 지원 등 나서

해외단체 구호물자 72% 가톨릭 통해 이뤄져

지난 1958년 광주대목구장 헨리 주교가 가톨릭구제회에 피해 상황을 보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공문(사진 왼쪽)과 1965년 신명순 충청북도 지사가 부강본당 신부에게 보낸 ‘외원 구호 요청 추천 의뢰’ 공문(사진 오른쪽)./자료제공=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천주교가 한국전쟁 이후 한국 재건에 적극 기여했다는 했다는 사실이 내부 사료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최근 3년간(2017~2019년) 진행된 ‘한국천주교사료목록화사업’을 통해 가톨릭구제회의 구호활동 등 4만2,419건의 사료를 확보했다고 20일 밝혔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가톨릭구제회는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선교하던 메리놀 외방전교회 캐롤 신부에 의해 1946년 처음 한국에 진출했다.

주교회의에 따르면 당시 가톨릭구제회의 구호활동은 주로 밀가루, 옥수수 가루, 분유, 영유아 영약식, 식용유 등 양곡과 식료품 같은 현물 지원으로 이뤄졌다. 1960년대 들어서는 지역개발사업으로 남해안과 서해안 간척사업으로 가난한 이들의 정착을 지원했고, 농촌지역 농수로 개설과 저수지 축조사업 등에도 나섰다. 가톨릭구제회는 당시 활동하던 74개 해외단체 구호물자 중 72%에 달하는 12만9,447톤의 현물지원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가톨릭구제회가 전국 각지에서 전개한 구호활동은 각 교구와 본당의 소장 사료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광주대교구청 문서고에 소장된 1958년 문서 200건을 조사한 결과, 당시 전남 목포지역에 수해가 발생해 이재민이 발생하자 당시 목포시가 광주대목구에 긴급 구호를 요했다. 청주교구에서는 120건의 사료를 통해 가톨릭구제회가 1960년대 청주지역 개발사업 지원에 나선 사실도 확인됐다.

그동안 가톨릭구제회의 구호활동은 지난 1974년 구제회가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관련 문서를 모두 소각함에 따라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에 확보된 자료는 한국천주교가 전파된 1784년부터 교계제도가 설정된 1962년까지의 각 교회에 소장된 사료로 디지털화 작업을 거쳐 통합검색시스템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주교회의는 “사료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의 교구와 본당 조직이 구호 활동에 있어 한국 정부와 해외 원조 기관의 매개체 역할을 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관련 사료발굴을 통해 구호 사업의 규모, 구호 방법과 절차와 사업의 성과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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