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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대재앙이 뉴 노멀로 자리 잡은 세계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호주 산불·美 대홍수·인도 열파 등

초대형 자연재난, 기후변화와 관련

재앙에도 석탄 지키기 안간힘 쓰는

트럼프 환경정책은 최악의 패악질

폴 크루그먼




[편집자주] 매주 화요일에 게재되던 해외칼럼이 이번주부터 화·금요일 2회로 늘어납니다. 매주 금요일 칼럼을 선보일 필자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경제학과 교수입니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2008년 불완전경쟁 시장에서의 국제무역에 대한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고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을 지냈습니다. 2000년부터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화염의 장벽, 핏빛으로 물든 하늘, 불지옥을 피해 해안가로 몰려든 재난지역 주민들…. 최근 호주에서 전송된 산불 영상은 끔찍한 악몽처럼 보인다. 거대한 산불이 내뿜는 열기가 육중한 트럭을 뒤집어놓을 만큼 강력한 ‘불회오리’까지 만들었다니 현장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사실 호주 산불은 지난해 발생한 일련의 기후재앙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이다. 미국 중서부를 휩쓴 대홍수, 수은주를 화씨 123도까지 끌어올린 인도의 열파,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에 덮친 전대미문의 혹서 등 지난해에는 초대형 자연재해가 유난히 잦았다. 이런 재앙들은 모두 기후변화와 관련돼 있다.

필자가 이들 모두를 기후변화로 ‘초래됐다’고 하지 않고 ‘관련돼 있다’고 말한 점에 유의하라. 바로 이것이 지난 수년간 많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 차이다. 개별적인 기상재해는 어떤 것이든 복수의 원인을 갖고 있다. 자연재해에 기후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 뉴스 보도가 직접적 언급을 피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기상학자들은 개연성에 초점을 맞추는 ‘극단적자연현상속성(EEA)’ 이론을 내세워 혼란을 잠재우려 했다. 기후변화가 특정 열파를 초래했다고 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온난화가 열파 발생의 개연성에 얼마나 많은 차이를 만들었는지 물어볼 수는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질문에 대한 전형적인 대답은 “큰 차이를 만든다”이다. 기후변화가 극단적인 기상현상의 발생 개연성을 높인다는 뜻이다.

기상재해에는 상당한 우연성이 개입하지만 재난 초기 단계에서 그 우연성은 기후변화로 인한 손상을 대다수 사람이 아는 것보다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언젠가 플로리다는 바닷속으로 잠기게 되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해수면 상승으로 폭풍해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다. 인도는 결국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한 불모의 땅으로 변할 것이나 그 전에 거듭된 열파와 가뭄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할 것이다. 기후변화의 온전한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기나긴 시간이 걸릴 터이지만 그에 앞서 국부적이고 일시적인 재앙이 숱하게 닥칠 것이다. 종말이 뉴노멀이 될 것이고,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서 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기후 관련 재난 확산이 사전 대응조치에 대한 반대를 꺾기에 충분할지 여부다. 일부 희망적 조짐이 있기는 하다. 그중 하나는 언론매체들이 기상이변에서 기후변화가 차지하는 역할에 관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파·홍수·가뭄 보도를 하면서 기후변화를 언급하지 않으려 기를 쓰는 기사들을 흔히 접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일선 기자들과 편집장들이 이제야 비로소 걸림돌을 넘어섰다고 본다. 대중 또한 이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는 듯 보인다. 기후변화에 관한 일반의 관심도 지난 1~2년간 상당히 높아졌다.



나쁜 소식은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주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화당 지지층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보수 정치인들의 극단적인 반환경주의는 그들의 입장에 대한 지적 방어가 불가능해지자 오히려 격화하고 있다. 과거 우파인사들은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실체를 둘러싼 심각한 과학적 이견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척했다.지금 공화당과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과학 전반에 적대감을 보인다. 그러면 과학자들마저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불순세력’의 일부인가.

단순히 미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초대형 산불에 갇힌 호주 정부조차 환경파괴적 사업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범죄로 다스리겠다는 으름장까지 놓으면서 석탄산업 보호에 대한 의지를 재천명했다. 현재 상황의 메스꺼운 역설은 결정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전망이 어느 때보다 밝아야 할 바로 그 시점에 오히려 반환경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에서 보면 기후변화의 위험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전망이 아니다. 앞으로 닥칠 자연재해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우리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재난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의 극적인 축소는 최소한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특히 대체에너지에 관한 대대적인 기술적 진보가 이뤄지자 트럼프 행정부는 태양열과 바람을 이용하는 경쟁자들로부터 석탄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환경정책이 2020년 선거에서 제 역할을 할까. 대다수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 문제를 주요 이슈로 삼지 않으려 든다.

물론 필자는 그 이유를 안다.역사적으로 우파의 환경정책이 제기한 위협은 추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공화당이 시도했던 오바마케어 해체와 달리 핵심 선거쟁점으로 내세우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연이어 밀려오는 기후 관련 재앙의 파도가 정치적 미적분법을 바꿔놓을지 모른다.

필자는 최근 발생한 대형산불과 홍수를 담은 광고를 내보내며 트럼프와 공화당이 이 같은 재난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꼬집는다면 꽤 큰 반향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의 환경정책이야말로 그가 미국과 세계에 행한 최악의 패악질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도 그 같은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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