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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서 시작된 유전 연구...'신의 영역' DNA 재조합까지 척척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18회> 유전공학

멘델, 완두콩 교잡 등 유전법칙 발표

부모의 유전자 자식에 대물림 규명

1990년대 '인간게놈프로젝트' 돌입

10여년 연구끝에 유전체 지도 완성

최근 유전자 편집 거친 쌍둥이 출산

'사회적·윤리적 문제' 우려 불거져





나는 발볼이 넓은 편이다. 그래서 보통 가게에서 파는 신발은 웬만하면 잘 맞지 않는다. 솔직히 매장에서 파는 신발을 신고 편안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학생 시절에는 주로 커다란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가끔은 구두를 신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가 되자 고민이 시작됐다. 일반적인 발 크기보다 한 사이즈 큰 것을 골라 질질 끌며 신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외국에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발볼이 넓은 ‘와이드’ 사이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가끔 출장길에 신발 가게에 들러 발에 잘 맞는 신발이 있으면 색깔별로 두 켤레씩 사와 한두 해 버틴다.

딸의 발은 내 발과 똑 닮았다. 발을 나란히 놓고 보면 비율에 맞춰 그대로 확대해놓은 것 같기도 하다. 조금 예쁜 신발을 골라서 신겨보면 불편하다며 처박아두고 매일 똑같은 운동화만 신고 다닌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나는 아빠 발을 닮았지” 하고 깔깔대며 웃는다. 하지만 곧 멋진 신발에 골몰할 나이가 되면 심각하게 아빠 탓을 하게 될 테다. 도대체 왜 이런 우악스러운 유전자를 물려줘서 나를 이런 고통에 빠뜨렸는가. 이렇듯 우리는 대단한 과학지식을 갖추지 않아도 하나의 개체가 생식 과정을 통해 특정한 형질을 물려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것을 보통 ‘엄마(아빠)를 닮았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 역시 오래전부터 이를 인지하고 있었고, 그 직관적 지식을 이용해 인류의 편의를 증진시켰다. 야생 상태의 동물과 식물을 개량해 가축과 농작물로 만드는 일은 오랫동안 인간이 선호하는 형질을 가진 개체를 반복해서 교배시키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이뤄졌다. 이 과정은 인류가 수렵·채집을 위주로 하는 생활에서 농경을 중심으로 하는 정주(定住) 생활로 바뀌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즉 인류는 자연 상태의 동물과 식물을 자신의 의도에 맞게 변형시킴으로써 편리함을 추구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 역시 상당한 변화를 맞게 됐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과 동식물이 같이 변화하는 공진화(共進化)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도 잘 알고 있듯이 아이가 항상 엄마나 아빠를 똑같이 닮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부모 세대에 없는 형질이 자식 세대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왜 나는 벌써 탈모가 진행되기 시작했는가. 이런 현상은 유전(遺傳)이라는 현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19세기 중반에 이 문제를 붙잡고 고심한 사람이 그레고어 멘델(1822~1884)이었다. 오스트리아제국 변방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멘델은 어린 시절부터 원예 및 육종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생계 문제 때문에 사제 서품을 받고 수도사가 된 후에도 수도원 뜰 구석에 텃밭을 가꾸면서 자신의 관심을 이어갔다. 완두콩을 이용한 그의 연구 결과는 1865년 ‘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이 논문에서 멘델은 나중에 ‘유전법칙’이라고 알려지게 될 이론을 제기했다. 완두콩에는 씨의 색깔(황색·녹색), 꽃 색깔(보라색·흰색), 콩깍지 모양(매끈·잘록), 완두의 키(크다·작다), 씨의 모양(둥글다·주름지다) 등 여러 대립형질이 존재했다. 그는 이러한 다양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을 서로 교잡해 재배했다. 그 결과 잡종 2대째에 이르면 대략 3대1 정도의 비율로 대립형질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는 양친으로부터 유전물질을 절반씩 받았을 때, 잡종 1대째에서는 대부분 우성형질이 나타나지만 2대째에는 열성에 해당하는 형질이 다시 발현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로써 부모와 다른 형질이 자식 세대에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멘델의 연구는 그가 살아 있을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수십년 동안 잊혀졌다.



그렇다면 멘델이 말한 ‘유전물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부모의 유전정보는 어떻게 자식 세대로 전달되는가. 멘델 이후 20세기 전반의 생물학자들은 ‘유전자(gene)’라는 물질을 가정하기 시작했다.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유전정보가 전달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기능을 담당하는 어떤 물질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유전자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것은 1950년대의 일이었다. 널리 알려졌듯이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X선 회절 사진을 바탕으로 디옥시리보 핵산 또는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냈다. 이로써 유전학(genetics)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이제 ‘유전자’는 형질의 발현을 설명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가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물질적 실체를 갖추게 됐던 것이다. 이를 통해 인류는 유전정보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과학으로서의 ‘유전학’이 아닌 테크놀로지로서의 ‘유전공학’은 이 발판 위에서 시작됐다. DNA 이중나선구조가 밝혀지고 20년 정도 지나서 과학자들은 DNA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고 다른 부위를 갖다 붙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말 그대로 유전자 ‘재조합’이다. 이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특정한 형질을 가진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최초의 바이오테크놀로지 벤처인 제넨테크(Genentech)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인슐린을 합성하는 박테리아를 만들어냈다. 그때까지 인슐린은 소와 돼지의 몸에서 분비되는 것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인슐린 제조사인 일라이릴리(Eli Lilly)는 매년 무려 5,600만두의 동물에 의존하고 있었다. 제넨테크는 실험실에서 인슐린 합성에 성공함으로써 큰 상업적 성과를 거뒀다.

한편으로 1980년대 이후 유전공학은 눈부신 성취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농업 부문에서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유용한 형질을 가진 농작물들이 경작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시작돼 10여년에 걸쳐 인간 유전체지도를 완성했다. 당시에는 이 성과를 해석해낼 수 있다면 의학·약학 분야의 새로운 성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됐다. 최근에는 ‘크리스퍼(CRISPR/Cas9)’라는 새로운 유전자 편집기술이 개발돼 예전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유전정보에 대한 인공적 개입이 가능해졌다. 급기야 2018년 11월 중국의 한 과학자가 유전자 편집을 거친 쌍둥이 여아가 태어났다고 발표해 세계 과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바야흐로 SF 영화에서나 보던 세상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유전공학을 둘러싼 사회적·윤리적 우려로 이어지게 된다.

몇 주 전, 어느 반찬 회사에서 흥미로운 제품을 보내왔다. 그동안 3개월 치를 한꺼번에 결제하면 할인을 해줬는데 이달부터는 할인 서비스를 중단하고 그 대신 유전자검사 키트를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택배로 상자가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면봉, 플라스틱 튜브와 함께 반송할 수 있는 봉투가 들어 있었다. 면봉으로 입안을 문질러 튜브에 넣고 뚜껑을 닫은 후 우편으로 반송하면 그것을 일본의 시험기관으로 보내 분석한 후 그 결과를 알려주는 서비스였다. ‘유전자를 분석해 유전적 위험도를 예측’하는 검사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입증된 유전자만을 선정해’ 분석한다는 안내문도 들어 있었다. 만약에 딸아이를 대상으로 검사를 한 후 문제가 발견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전자 편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옵션이 주어진다면? 이제 곧 모든 신생아를 대상으로 이런 검사를 하는 세상이 오게 되는 것일까. /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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