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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모든 세대 취향 저격...세상에 없던 미술관 만들 것"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4050 발길 늘고 현대미술서 한국근대미술까지 테마 다양해져

관객들 요구 적극 수용하되 '동시대의 의제' 담는 미술관 추구

2022년이면 분관 작업 마무리...권역·기능별 활용방안 준비





“영국의 국립 테이트미술관은 런던에 테이트모던과 테이트브리튼이 있고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에 테이트리버풀, 콘월주에 테이트아이브스를 두고 네트워크를 이룬 ‘도시 분관’ 체제입니다. 하지만 서울시립미술관처럼 한 도시 안에 여러 미술관이 산포한 ‘도시 네트워크’형 미술관은 세계 어디에도 일치하는 사례가 없습니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발전 과정, 발전 방식이 맞물려 자연스럽게 드러난 결과일 수도 있는데, 세상에 없던 모델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사례라 더 기대를 모읍니다.”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SeMA)이라고 하면 서울 중구 정동의 ‘서소문 본관’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노원구 중계동의 ‘북서울미술관’과 관악구 남현동의 ‘남서울미술관’도 모두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이다. 마포구 상암동 난지한강공원 내 옛 침출수처리장을 개조해 예술가를 위한 작업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와 백남준이 어릴 적 살던 집터의 한옥을 전시장으로 리모델링한 종로구 창신동의 ‘백남준기념관’도 있다.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내 ‘SeMA 창고’나 영등포구 여의도의 ‘SeMA 벙커’는 미술관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유휴공간을 활용한 사례다.

지난 2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관장실에서 만난 백지숙(55·사진)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우리 미술관은 미술관을 넘어 메가로시티라 불리는 서울시 문화행정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 복합 기능의 미술관”이라고 강조하며 “우리의 최대 강점은 ‘코리아’보다도 더 유리할 수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 브랜드이니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중장기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담=신경립 문화레저부장 klsin@sedaily.com



3월20일 취임 이래 9개월이 돼가건만 백 관장의 집무실은 일반적인 미술관 관장실과는 사뭇 다르다. 관장의 취향을 반영한 미술관 소장 작품 한두 점은 벽에 걸려 있고, 자신의 업적 기록물과도 같은 주요 도록들이 책꽂이를 채우고, 멋스러운 가구들이 뽐내고 있을 법하지만 그의 집무실은 차트와 숫자뿐인 화이트보드와 서류 꾸러미로 가득 차 있다. 서가에 아직 꽂히지도 못한 책 꾸러미는 한쪽 구석에 쌓여 있었다.

“올해는 연간 관람객 200만명을 돌파할 듯합니다. 2017년에 까르띠에 컬렉션 전시 때 무료 관객 연간 200만명을 넘긴 적이 있지만 지난해에는 136만명으로 주춤했거든요. 올해는 특히 무료가 아닌 유료 관람객을 포함한 200만명이라 의미가 남다릅니다. 179명의 미술관 직원들과 함께 그간 13개의 전시를 열었고 15개의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렸습니다. 전에는 이 정도로 숫자에 민감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수치를 챙기게 되네요.”

백 관장이 짐도 못 풀 정도로 바쁜 이유다. 그는 취임 이후 어떤 관람객들이 어떤 이유로 미술관을 찾아오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도시 네트워크형 미술관인 서울시립미술관의 중장기계획을 수립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전임자들이 고생한 덕분에” 취임식 바로 다음날 개막해 8월까지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전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며 118일 동안 37만5,350명이 관람하는 화제의 전시가 됐다. 수치적으로도, 미술관의 향후 방향성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도 의미가 큰 전시가 끝난 뒤 백 관장은 외부기관에 정교한 관람객 분석을 의뢰했다.

“미술관의 주 관람객이 서울에 거주하고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20~30대 여성이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지만, 호크니전에서 연령대가 40~50대로 확대되는 경향이 포착됐습니다. 예전에는 젊은 엄마가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오는 모습이 가족관람의 통상적 형태였지만 20~30대가 50~60대 부모들과 같이 오거나 부모를 위해 관람권을 구매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또 사전정보를 알고 전시를 본 관람객이 약 79%로, 작가와 작품에 대해 공부하고 현장을 찾은 뒤 다시 재학습하려는 적극적인 관람이 많았습니다. 입장권이 1만5,000원의 고가였음에도 재관람률이 높았죠. 예전 같았으면 그저 스쳐 지나갔을 아카이브와 다큐멘터리 영상에서의 관객 체류시간이 상당히 길었고, 추가 문의도 많았다는 것 또한 달라진 점입니다.”



과거 미술관의 인기 전시는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의 ‘인상주의 걸작’을 위시한 앙리 마티스, 빈센트 반 고흐, 마르크 샤갈 등 해외 거장의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였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문화적 풍요의 시대에 성장한 세대가 사회를 이끌고 새로운 소비주체로 부상한 ‘밀레니얼’이 급성장하면서 미술 관람의 취향도 변화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도 영화를 소재로 한 ‘팀 버튼’ 전시가 흥행에 성공했고 순수미술이 아닌 디자이너 안상수, 무용가 안은미 등의 전시가 주목을 끌었다. 북서울미술관에서 9월까지 열린 한국근현대 명화전 ‘근대의 꿈’의 인기는 관객 수요가 서양미술에만 쏠린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켰다.

그에게 미술관의 방향성은 “잠재된 현대미술 걸작에 대한 수요를 파악해 새로운 삶의 방향으로 참여의 폭을 넓혀가는 일”이다. 백 관장은 “르네상스나 렘브란트, 인상주의 같은 고전을 선호하는 관객도 있지만 (호크니전의 관람객처럼) 동시대적인 삶을 공유하려는 의지도 상당하다”며 “관객의 요구를 반영하되 시대적 의제도 던지는 ‘균형과 매개’로서의 미술관 역할이 중요한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백 관장은 2년에 한 번씩은 호크니 전시 같은 ‘현대미술 걸작전’을 개최할 계획이다. 백 관장은 “개인적으로는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보다는 ‘현대미술 걸작전’이라고 부르고 싶다. 거대자본의 물량공세로 관객을 끌어들여 최대의 이윤을 내려는 ‘블록버스터’ 전시를 공공미술관이 기획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우리 미술관은 단순히 전시장을 대관해주는 곳이 아니기에, 테이트모던과 공동기획으로 추진한 ‘호크니전’의 사례처럼 공동으로 기획하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의 맥락을 만들어내는 전시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미술의 급진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가장 앞서서 실험하는 비엔날레를 미디어아트로 특화해 2년마다 개최하는 ‘미디어시티’ 비엔날레와 번갈아 현대미술 걸작전을 열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원의 교집합이 점점 커지면서 우리 사회의 다양성·포용력·창의력이 더 커지지 않을까 상상해본다”고 말을 이었다.

시민 입장에서는 누리고 즐길 전시가 중요하지만, 미술 행정가로서는 미술관을 어떻게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백 관장은 “K팝·K아트 등 K(한류)의 핵심은 서울이라고 본다”며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활력과 매혹적인 점을 어떻게 현대미술의 언어로 풀어낼 것인지가 브랜딩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박물관·미술관 도시 서울’의 문화정책에서 모선(母船) 미술관의 역할을 맡고 있다. 다만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멋진 건축’으로 눈길을 사로잡지만 서소문 본관은 문화재라는 한계가 있다. 1928년 경성재판소로 지어진 르네상스식 건물 중 문화재의 가치를 간직한 전면부를 유지한 채 2002년 개관했다. 백 관장은 “서소문 본관이 자리 잡은 정동, 덕수궁길은 역사성도 있고 동시대의 함성도 들리는 곳이기에 문화적 입지가 중요하다”면서 “당초 2016년에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내년에 타당성 조사를 거쳐 노후한 물리적 시설의 개·보수 규모와 일정·예산 등의 윤곽이 잡힐 것 같다”고 귀띔했다.



물론 ‘랜드마크’ 미술관의 실속은 외관이 아니라 콘텐츠에 해당하는 소장작품에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5,000여점의 소장품을 모았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간 200점씩 늘리는 것이 미술관의 기관평가지표였지만, 수량 증가보다 질적 향상이 중요하다고 보고 주요 작가의 수작을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다”면서 “확보한 소장품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소장품을 제대로 보여줄 전시, 온라인을 통한 소장품 노출 등의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아쉬운 점은 예산이다. 올해 미술관 운영 예산은 125억원으로 이 중 소장품 구입 예산은 16억원 수준이다. 최근 김환기의 작품이 132억원에 낙찰된 것을 감안하면 빈약하다. 내년에 20주년을 맞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예산도 광주비엔날레의 70억원, 부산비엔날레의 50억원 수준과 비교하면 17억원 안팎으로 조촐하다. 그럼에도 백 관장은 씩씩하다.

“서울시가 오는 2021년에 평창동 미술문화복합공간, 2022년에는 서서울미술관·서울사진미술관을 개관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완결되면 10개의 분관이 어떻게 협력해서 권역별·기능별로, 역사와 규모를 달리해 활용될 수 있을지를 지금부터 계획해야 합니다. 뉴욕·런던·파리에 가지 않고도, 서울에서 미술관만 다녀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리=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서경이만난사람>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오승현기자


She is…

△1964년 서울 △1988년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1990년 서울대 미학과 석사 수료 △1999년 여성미술제 ‘팥쥐들의 행진’ 공동기획 △2000~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큐레이터 △2005년 독일 다름슈타트미술관 ‘시각의 전쟁’ 공동기획 △2007~2008년 아르코미술관 관장 △2006년 광주비엔날레 공동기획 △2011~2014년 아뜰리에 에르메스 예술감독 △2013~2014년 제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예술감독 △2016년 SeMA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예술감독 △2019년 3월~ 서울시립미술관장

◇주요 저서 △이미지에게 말 걸기(1995) △짬뽕(1997) △본 것을 걸어가듯이(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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