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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규칙보다 근로계약"… '임금피크제' 정부 해석 뒤집은 대법

경영계 "규정바꿀때 개개인 동의

각종 제도 도입 어려워져" 불만

"노동자가 자유의사에 따라

근로조건 결정해야" 첫 판결

무효화 유사 소송 이어질 가능성

서울교통공사 노조원들이 지난 10월14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임금피크제 폐지와 안전인력 충원 등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를 비롯한 근로조건을 정할 때 개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수정된 취업규칙보다 이전에 맺은 근로계약이 우선한다는 판단을 처음으로 내림에 따라 노사 모두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경영계에서는 근로조건 등 규정을 바꿀 때 근로자 개개인의 동의까지 거쳐야 한다면 각종 제도의 도입이 상당히 어려워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노사 합의를 거쳤더라도 임금피크제, 임금, 퇴직금, 복지후생 비용, 각종 수당 등 개별 근로자가 동의하지 않은 근로조건 변경을 무효화하라는 유사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대법 “근로조건 자유결정 원칙이 우선”=임금피크제 등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에 제동을 건 이번 대법원 판단의 핵심근거는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 존중이었다. 1·2심은 당초 노동조합의 과반이 동의한 취업규칙이라면 기존 연봉계약조차 일괄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고 봤다. 하급심 재판부는 “취업규칙에 대한 노조 동의에는 당연히 기존 연봉제의 적용을 배제하고 임금피크제를 우선 적용해야 한다는 합의가 포함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4조의 취지를 우선해야 한다고 봤다.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계약은 무효’라고 정한 근로기준법 제97조 역시 취업규칙을 개별 근로계약보다 우선하라는 취지가 아니라 취업규칙보다 못한 근로계약을 막기 위한 노동자 보호 수단으로 해석했다. 노조나 전체 근로자 과반의 동의만 받으면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도록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요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취업규칙이 집단적 동의를 받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경우에도 근로기준법 제4조가 정하는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은 여전히 지켜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사업장별 임금피크제 적용요건 까다로워져=이번 판결에 따라 앞으로 일선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채택하는 데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소송의 대상이 된 업체처럼 근로계약서에 연봉을 기재한 상태에서 취업규칙을 변경해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선 사업장에서는 대체로 정년을 보장받되 임금은 줄이는 구조를 채택해왔지만 앞으로 개별 근로자의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경영계는 고용부가 내놓은 행정해석과 매뉴얼을 그대로 따른 기업의 피해를 우려한다. 고용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취업규칙 변경 당시 재직 중인 개별 근로자의 반대가 있었더라도 변경이 적법·유효하게 이뤄졌다면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밝힌 바 있다. 임금피크제 매뉴얼에서는 과반 노조 혹은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있으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소송을 대리했던 김기덕 변호사는 “계약은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정하는 것처럼 임금 등 근로조건을 규정하는 근로계약도 근로자 당사자와 사용자 간 합의로 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본다”고 해석했다.

재계와 법조계에서는 현 정부 들어 노사갈등을 다루는 대법원의 판단이 노동자 쪽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절반을 넘은 지난해 8월 이후부터 친(親)노동적 진보 판결을 쏟아내는 분위기다. 대법원은 통상임금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다스, 올 2월과 4월 시영운수·예산교통 사건에서 모두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을 인정하지 않고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5월에는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한진중공업에 대해서조차 추가수당 지급으로 인한 경영 위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지난해에는 특수하게 고용된 학습지 교사와 방송 연기자까지 노조법상 근로자가 맞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 전반으로 파장 번질 가능성 배제 못 해=취업규칙을 근거로 근로계약서에 적힌 것보다 불리한 근로조건을 적용받은 이들이 유사한 형태의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이에 대해 “노조 동의 이후에 각 근로자의 동의까지 또 받으라고 하면 어떤 규정도 바꾸지 못하고 영원히 유지하라는 말과 같다”며 “기업과 노사관계 현실에 대한 이해와 노력이 전혀 없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적으로 근로시간·임금 등 근로조건의 중핵적인 부분은 개별 근로자의 동의를 받고 변경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준호·윤경환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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