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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추수감사절 유감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결점 보완하며 전진해왔던 美

제왕적 대통령·정치적 양극화로

공화제와 민주질서 붕괴 위험





추수감사절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명절이다.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서 미국의 세속적 명절인 이날, 감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낙천주의자인 필자는 결점을 보완해 전진을 이루는 것이 모든 미국적 이야기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은 이처럼 긍정적 관점을 고수하기 힘들다. 미국의 최대 자산인 입헌공화제와 민주적 특징이 붕괴위험에 처한 듯 보인다. 대통령이 구사하는 언어를 주의 깊게 들어보라. 6월 재선 캠페인 출범식에서 그는 “우리의 정적인 극단주의적 민주당원들은 증오와 편견, 그리고 분노에서 동력을 얻고 있다”며 “그들은 당신은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미국을 파괴하고 싶어한다”고 외쳤다.

정치 담론에서 ‘반역’과 ‘쿠데타’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는 것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탄핵조사가 거짓말과 환상을 잘라낼 증거와 팩트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을지 모르나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정치적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이렇듯 시퍼런 독기를 품은 이 시대를 우리가 과연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그랬다. 미 공화국은 판이한 아이디어와 가치를 지닌 서로 다른 사람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대단히 특별한 창조물이다. 미 합중국은 노예주와 노예 폐지론자 사이의 치열한 싸움을 견뎌냈고, 1차 적색공포와 매카시즘,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의 충격을 이겨냈다. 이판사판의 싸움이었던 이들 하나하나는 모두의 감정을 격동시켰고 결국 비통함과 실망감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역사는 설사 미국처럼 강력하고 부유한 국가의 역사라 하더라도, 행복한 결말의 즐거운 이야기들로 채워진 동화책 전집이 아니다. 역사는 승리와 패배·무승부로 끝난 싸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번에는 다를까. 요니 아펠바움은 시사잡지 애틀랜틱에 게재된 ‘미국은 어떻게 종말을 맞을까’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그렇다’고 단언한다. 깊은 사고를 자극하는 그의 글에서 아펠바움은 “미국이 부유하고 안정된 민주국가가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지배적 위치에 있던 그룹이 정치적 소수파로 이동 중인 반면 기존의 소수파는 동등한 권리와 이익을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와 관련해 복스닷컴의 에즈라 클라인은 “미국의 시니어들 가운데 거의 70%가 백인 기독교도인 반면 젊은 층의 29%만이 백인 기독교인”이라고 지적한다.

아펠바움은 과거에도 이 같은 변화의 소형 버전이 있었고 그 순간마다 미국은 심각한 파행과 나라가 두 동강이 날 듯한 진통을 겪었다고 말한다. 노예제는 10년의 내전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끝이 났고, 흑인 차별정책인 짐 크로를 폐기하는 데 거의 100년이 걸렸다. 미 합중국은 전 세계의 이민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전에 중국인 입국금지법을 제정했고, 12만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여성들은 투표권을 확보하기 위해 기나긴 투쟁을 해야 했고, 동성애자들은 인정을 받기 전까지 조직적 차별과 박해를 견뎌내야 했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은 인구변화를 둘러싼 새로운 전투를 치르고 있다.



미국의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우려할 만한 추세는 유례없이 확대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위법 혐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의회에 협조하지 않는 그의 완강한 입장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낼 수밖에 없다. 만일 의회가 관련 문서들을 입수하고, 증언청취를 위해 행정부 관리들을 소환하는 등 감독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공화제의 본질적 시스템은 망가지고,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 독재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와 유사한 시기를 지나왔다. 아서 슐레진저는 1973년 그의 저서 ‘제왕적 대통령’에서 이에 관해 말했다. 워터게이트 이후 대통령의 폭주를 막기 위한 관련법이 속속 제정되고,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은 이 문제가 완전히 통제될 것으로 믿었다. 일각에서는 백악관의 입지와 권한이 지나치게 위축되고 약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사실 슐레진저가 2004년 재발간한 ‘제왕적 대통령’에서 지적했듯 대통령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됐다. 9·11테러에 따른 대중의 두려움이 행정부 권한을 강화해 통제 불능의 상태로 몰아가는 관문의 역할을 했다. 대통령은 민간인 도청 권한을 손에 넣었고, 마음대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수감된 테러 용의자들을 고문하고, 무기한 억류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대통령은 소정의 절차를 밟지 않은 채 그가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미국 시민의 처형을 명령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허약한 것이야말로 미국이 지닌 심각한 문제라고 믿는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게서 지극히 유용한 보좌관의 모습을 발견했다. 바 장관은 침묵과 버티기로 의회의 요구를 묵살했고, 용기백배한 행정부 관리들은 의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안하무인의 태도를 연출했다.

사람들은 종종 건국의 아버지들이 오늘날의 미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자문하곤 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들이 느낄 가장 큰 충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대통령의 권한일 것이다. 입법부와 사법부는 아직도 건국 당시의 모습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지만 백악관은 그렇지 않다.

엄청난 인구 변화, 맹렬한 정치적 반발과 견제를 거부하는 대통령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필자의 낙관론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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