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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된 정제마진…'캐시카우' 정유도 휘청

싱가포르 정제마진 배럴당 -0.6弗

환경규제 'IMO2020'도 타격

반도체 이어 산업계 전반 먹구름





정유사 이익의 핵심지표인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이 지난 2001년 6월 이후 18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지금껏 수출을 주도해온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1년여 사이 3분의1 수준으로 폭락한데다 한국 경제의 ‘캐시카우’로 여겨졌던 정유업까지 휘청거리며 국내 산업계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와 운송비를 차감한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만큼 정유사는 사실상 역마진이 발생하게 된다. ★관련기사 3면

2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이달 셋째주 배럴당 -0.6달러를 기록했다. 일일 기준으로는 22일 배럴당 -1.1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일일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9년 10월14일의 배럴당 -0.12달러 이후 10년 만이고 주간 기준으로는 2001년 6월 첫째주의 -0.5달러 이후 18년 만이다. 정유사들은 정제마진이 배럴당 4달러는 돼야 손익분기점(BEP)을 넘는다고 보는 만큼 이 상태라면 정유시설을 가동할수록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어 4·4분기 대규모 적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제마진은 두 달 전 사우디아라비아 원유시설에 대한 드론 테러로 공급이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로 9월 셋째주 배럴당 10.1달러까지 치솟은 뒤 줄곧 내리막이다.

정제마진 폭락의 원인으로는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정유제품 수요 감소가 첫손에 꼽힌다. 여기다 일부 트레이딩 업체들이 추가 가격 하락에 베팅하며 정유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선박 연료의 황 함량을 기존 3.5%에서 0.5%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환경규제 ‘IMO2020’의 내년 시행으로 고유황 벙커C유 가격이 배럴당 37.9달러 수준으로 두 달 전(71.7달러) 대비 반토막난 것 또한 타격이 컸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원유정제 과정에서 벙커C유가 일부 생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벙커C유 가격 급락은 정유업계에 일단 악재”라며 “경유 또한 시장 수요를 넘어서는 공급이 이뤄지며 수익 개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대부분의 업체들이 이달 들어 정유공장의 가동률을 줄이고 있습니다. 미중 무역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돼 내년 실적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최근 만난 정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제마진 하락으로 올 4·4분기 영업손실이 우려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유업은 글로벌 경기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기는 하지만 주간 기준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18년 만의 일이라는 점에서 몇몇 업체는 ‘어닝쇼크’를 우려하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은 최근 수년간 ‘석유에서 화학으로(oil to chemical)’으로의 사업전환을 위해 수조원을 쏟아부었지만 화학 사업마저 수요 부진으로 수익이 급감해 내년 사업계획 구상조차 힘든 상황이다.

25일 정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중 무역분쟁이 글로벌 정유·화학사에 20여년 전의 아시아 금융위기, 10여년 전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먹는 타격을 주고 있다. 정유사 이익의 핵심지표인 주간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18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화학제품의 원재료인 나프타와 중간재인 에틸렌과의 가격차이(스프레드)는 손익분기점(BEP)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제마진이 감소한 원인으로는 미중 무역분쟁에 따라 수요는 전반적으로 정체된 반면 중국과 미국 등의 공장 가동률은 늘어난 것이 첫손에 꼽힌다. 정유 업계에서는 중국의 정유사 가동률이 연중 최대 수준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값싼 이란산 원유를 수입해 수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유 업체들 또한 공장 가동률을 90%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정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또한 셰일오일 덕분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산 원유에 의존하는 한국 등 일부 국가 대비 원가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선박 연료의 황 함량을 기존 3.5%에서 0.5%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환경규제 ‘IMO2020’의 내년 1월1일 시행도 악재로 작용했다. 고유황 벙커C유 가격이 이달 배럴당 37.9달러 수준으로 두달 전(71.7달러) 대비 반 토막 난 반면 경유 가격은 75.7달러로 두달 전(78.9달러)과 별 차이가 없다. 정유사들이 IMO2020에 대비해 경유 생산량을 늘려 공급과잉이 된 반면 벙커C유 수요는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제마진 하락으로 SK이노베이션·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국내 4대 정유·화학 업체가 4·4분기에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에쓰오일의 경우 올 2·4분기에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타격으로 905억원의 영업손실을 보였으며 3·4분기 영업이익도 2,307억원으로 전년 동기(3,157억원)에 크게 못 미쳤다. 여타 업체들도 전년 동기 대비 수익이 줄어든 상황에서 4·4분기 실적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화학 부문에 대한 투자로 정유 부문의 손실을 메운다는 계획이지만 화학업종 또한 상황이 좋지 않다. 화학제품의 원재료인 나프타와 중간재인 에틸렌의 톤당 스프레드가 지난달 212달러까지 좁혀지면서 되레 손실을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나프타와 에틸렌의 스프레드가 톤당 250~300달러는 유지돼야 수익이 난다고 보고 있다.

정유 사업에 대한 글로벌 불안 심리는 최근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기업 아람코의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우디 측은 아람코의 기업가치를 2조달러가량으로 보는 반면 투자 업계에서는 1조2,000억~1조5,000억달러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람코는 지난해 애플의 순이익(595억달러) 대비 두 배가량 많은 1,110억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한 만큼 자사의 몸값으로 애플 시가총액(1조1,631억달러)의 두 배가량을 기대하고 있지만 시장은 다르게 보고 있는 셈이다. 업계의 분석을 종합하면 미국의 셰일오일 공급 증가로 글로벌 에너지 지형이 변화하고 있는데다 친환경에너지 사용 확대로 석유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투자 업계에서는 아람코의 미래 가치를 낮게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석기시대가 돌이 없어 끝난 것이 아닌 만큼 석유시대도 석유가 없어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석유가 아닌 대체연료 부상에 베팅하기도 한다. 국내 정유사들도 전기차 배터리 외에 전기차나 태양광 등에 대한 투자로 수익원 다변화를 노리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벙커C유 가격이 급락한 덕분에 국내 기업이 수익 하락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정유사들은 벙커C유 등 잔사유를 넣어 휘발유·등유·경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내는 고도화시설에 최근 몇년간 수조원을 쏟아부었다. 올해 초 기준 현대오일뱅크의 고도화율은 40.6%로 국내 최고 수준이며 GS칼텍스(34.3%), 에쓰오일(33.8%), SK이노베이션(29%) 등도 높은 고도화율을 자랑한다. 일본·중국 정유 업체들의 고도화율이 20% 초중반 수준이라는 점에서 국내 업체들로서는 어느 정도 실적 방어가 가능한 셈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정유 부문의 실적이 뒷받침돼야 화학 부문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가능한 상황에서 이 같은 정제마진 폭락은 정유사 경영진으로서는 생각하지 못한 악재”라며 “아람코의 몸값도 갈수록 떨어지는데 그보다 몸집이 작은 국내 기업으로서는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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