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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에 지친 民心…'작은 불평등'에도 분노 폭발

재정적자·실업률은 치솟는데

소득 상위계층에 富편중 심화

정부 보조금 폐지·稅 신설 등

정책 헛발질로 기름까지 부어

중남미·중동·阿서 잇단 '봉기'

각국 뒤늦게 수습 시도하지만

단기간 내에 해결하기 힘들어

정국 혼란 한동안 지속될 듯

14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한 반정부시위자가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공공요금 인상과 기득권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분출된 칠레 시위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정권을 뒤흔드는 시위가 빗발치고 있다. /산티아고=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일(현지시간)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TV연설을 통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부정선거 논란으로 거센 시위가 이어지고 군과 경찰마저 퇴진을 압박하자 14년간 지켜온 권좌에서 내려오기로 결정했다. 퇴진은 불명예스러웠다. 그는 11일 밤 트위터에 ‘정치적 이유로 나라를 떠나는 것이 고통스럽다. 더 강해져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의를 표한 지 하루 만에 멕시코로 망명했다.

모랄레스는 한때 볼리비아의 혁신적 지도자, 노동자와 원주민의 수호자, 전 세계 좌파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2005년 대선에서 당선된 후 천연가스 시설 국유화 등을 통해 볼리비아의 빈곤 해소에 앞장섰다. 그에 대한 볼리비아인들의 신뢰는 더욱 단단해져 4년 후인 2009년 대선에서는 64.2%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연임에 성공했고 2013년에도 61.4%의 지지율을 얻었다. 4%대의 경제 성장률이 이어지면서 볼리비아의 최저임금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를 앞지르게 됐다. 2000년대 초중반 1,000달러에 미치지 못했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4년 3,000달러 수준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천연가스 수출 감소와 재정적자 증가로 지지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재정적자가 GDP의 8%까지 불어난 가운데 경제성장의 과실이 불평등하게 배분되면서 도시 빈민이 급증했다. 혈세로 대통령궁을 새로 짓고 생가를 자신의 기념관으로 만들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자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기 시작했다. 시위의 명분은 대선 부정이었지만, 바탕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남미 전문 이코노미스트인 마이클 리드는 가디언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을 때는 불평등을 감수할 수 있었지만 나와 자녀의 임금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지면서 분노가 폭발했다”고 지적했다.

좌파 정권인 볼리비아뿐 아니라 우파 정권이 들어선 칠레에서도 시위대의 분노는 지도자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 촉발된 시위는 폭동으로 번졌다.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지만 소득 상위 1%가 전체 국가 부의 33%를 차지할 정도로 소득 양극화가 심해 사회적 불만이 쌓여온 것이 결정적이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시위 초기 가족과 최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부인은 시위대를 ‘외계인’으로 폄훼했다. 더구나 피녜라 대통령의 사촌인 안드레스 차드윅 내무장관이 시위대를 ‘범죄자들’이라고 표현하고 후안 안드레스 폰타이네 경제장관이 “혼잡시간대에 할증요금을 내기 싫다면 더 일찍 일어나 출근하면 된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시위가 가라앉지 않았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마저 취소되면서 피녜라 대통령은 결국 요금 인상 철회뿐 아니라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야 했다. 곤살로 블루멜 내무장관은 최근 피녜라 대통령과 회동한 후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에 제정된 헌법을 개정하는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에콰도르에서도 지난달 초 정부가 유류보조금을 폐지하면서 석유 가격이 오르자 빈곤층을 중심으로 격렬한 반정부시위가 벌어졌다. 열흘 넘게 거센 시위가 이어지자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은 유류보조금 폐지 결정 철회 등 시위대의 주요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시위는 좌파나 우파 등 정권의 정치성향과 관계없이 벌어지고 있다”며 “시위대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지역 (경제) 정책에 초점을 맞춘 정치인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중동에서도 시위대는 정권 지도자들을 옥죄고 있다. 레바논에서는 지난달 17일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의 세금 계획에 반발하며 시작된 반정부시위가 이어져 결국 지난달 29일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시위 발생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하지만 시위대의 분노는 누그러들지 않았고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12일 아랍국가들에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아운 대통령은 새 총리 지명 후 내각 구성을 위해 의회와 공식적인 협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라크에서는 부패와 생활고에 불만을 제기하는 시위가 지난달부터 이어지면서 지난달 31일 아딜 압둘마흐디 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혔다. 바르함 살리흐 이라크 대통령 역시 자신의 후임을 찾으면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반정부시위로 인한 최고지도자의 불명예 퇴진은 북아프리카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알제리에서는 5선을 노리던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부패청산과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시위의 분노에 고개를 숙이며 4월 사임했다. 이집트에서는 9월 대통령 사임을 외치는 시위가 7년여 만에 재개되기도 했다. 이들 국가에도 청년실업률 급증 등 경제 문제가 내재돼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중동과 북부아프리카의 청년실업률은 29.7%에 달한다. 이는 국제 평균치보다 2배 높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홍콩 민주화시위도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퇴진 이슈가 도마 위에 올라 있다. 람 장관의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추진이 홍콩 시위의 도화선이 된 만큼 결국 람 장관이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시위가 잦아들기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들 국가는 시위대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며 달래고 있지만, 시위로 인한 지도자들의 불명예 퇴진이 이어지면서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4년간 정권을 쥐었던 모랄레스의 사임이 중남미 주변국에 충격을 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모랄레스의 사퇴 발표 직후 베네수엘라·쿠바 대통령과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 등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이 이를 ‘쿠데타’의 결과라고 한목소리로 비난하고 나선 것은 반정부시위가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브라질과 칠레 등 우파 정권 역시 수위는 다르지만 이번 사태가 확산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브라질과 칠레는 모랄레스 대통령 사퇴 직후 볼리비아에 신속한 선거를 요구했다. 브라질은 현재까지 반정부시위로부터 안전한 국가로 분류되지만, 좌파 성향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석방되면서 반정부시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불평등 해소 등 경제 문제 해결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시위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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