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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포퓰리즘 정책이 경제침체 부른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칠레·레바논 등 '정치적 저항'

트럼프 보호주의에서 비롯된

경제성장의 붕괴가 근본 원인





9년 전 튀니지에서 시작된 거리시위가 중동지역 전체로 번지며 ‘아랍의 봄’을 불러왔다. 그리고 지난 몇 주간 그와 유사한 상황이 지구촌 곳곳에서 전개됐다. 칠레에서 레바논, 이라크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파업과 행진과 폭동이 줄을 이었다. 이 ‘가을의 저항’에 어떤 공통분모가 있는 걸까.

얼핏 보면 각개 운동이 지니는 정치성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경제성장의 붕괴라는 공통된 배경을 지니고 있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가 뚜렷한 동반둔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가장 더딘 성장 속도를 기록 중’이라는 경고와 함께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를 대폭 낮췄다.

이처럼 성장 기조가 무너지자 극심한 압박감을 느낀 중산층을 중심으로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가 급속히 확산했다. 중산층은 부패와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여력을 지닌 집단이다. 칠레에서는 지하철 요금 인상이 수십년래 최악의 폭력시위로 이어졌다. 이 사태는 기대치 붕괴라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바탕에 깔고 있다. 1900년대에 연 6%, 2000년대에 4%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칠레는 라틴아메리카의 경제 스타였다. 그러나 지난 5년 사이 칠레의 성장률은 연평균 2%로 추락했고 IMF는 지난해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성장 전망치를 2%에서 0.2%로 낮췄다.

성장둔화는 라틴아메리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또 다른 폭력시위의 현장인 레바논의 경제 성장률도 0%로 떨어졌다. 세계 경제대국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뉴욕의 펀드매니저로 활동 중인 호세 루이스 다자에 따르면 주요7개국(G7) 회원국들은 이전 20년간 줄곧 그랬듯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사상 최저점까지 인하했음에도 성장률은 과거 10년 새 반 토막이 났다. 유럽 경제의 엔진인 독일은 이미 침체기로 접어들었다는 게 독일 중앙은행이 내린 결론이다.

도대체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원인이 바탕에 깔려 있고 국가별 상황 역시 차이를 보이지만 한 개의 공통분모가 끼어 있다. 지난 몇 년간 세계를 휩쓴 포퓰리즘과 내셔널리즘의 격랑에 실려 경제의 장기성장을 왜곡시키는 근시안적 정책이 따라왔다는 점이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양호한 경제적 활력을 지닌 국가다. 그러나 시진핑 국가주석이 권좌에 오른 2013년 이후 중국은 핵심적인 시장개혁 궤도에서 벗어났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니컬러스 라디는 보고서를 통해 최근 몇 년간 중국 정부는 관영기업들을 상대로 여신과 금융 지원을 아끼지 않은 반면 민간 분야에 대한 자금줄은 동여맸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중국 경제는 심각한 둔화세를 보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게다가 중국 경제가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경기둔화로 인한 파급효과는 국경 너머로 번져나갈 수밖에 없다. 최근 독일 경제가 고전을 면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도 독일산 물품에 대한 중국의 수요 하락이다.

양파 값을 둘러싼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인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위자들을 격분시킨 근본 요인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인도 경제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시장개혁가를 자처했지만 농부들에 대한 정부보조금을 배가하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효율적 관치금융의 개혁을 거부하는 등 국가통제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인도의 성장률이 연 6%로 떨어졌다고들 하지만 정부가 부풀려진 통계치를 사용했기 때문에 실제 수치는 아마도 이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멕시코 경제는 좌파 포퓰리스트 대통령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반기업 정책들로 제자리에 멈춰선 상태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피치는 멕시코 국영 석유회사의 채권을 정크본드로 평가했다. 현재 멕시코의 경제 성장률은 0%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추세 중 일부는 수년에 걸쳐 형성됐지만,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내놓은 단 하나의 정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주의는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 및 투자자들을 뒤흔들어놓았다. 이와 관련해 IMF는 ‘제조업 활동의 급격한 저하와 높은 관세로 인한 국제교역 축소, 장기화한 무역정책의 불확실성이 투자와 자본재에 대한 수요를 해치면서 성장약화를 초래했다’고 설명한다.

미국 경제의 건강상태는 아직 양호하지만 언제까지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는 외딴 섬으로 남아 있을지는 미지수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가능성과 워싱턴의 대통령 탄핵 움직임, 미국과 중국의 지속적 갈등이 맞물리면서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앞으로 상황이 악화한다면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상태에서 초저금리 정책을 채택한 각국 정부가 쓸 수 있는 실탄은 거의 떨어질 것이다. 정치적 시위는 무너진 기대, 커지는 불평등, 지속적 부패와 깊은 좌절감 등의 요인들이 어우러진 이상한 조합에 의해 촉발된다. 그러나 정치적 저항은 늘 성장이 정체될 때 불붙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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