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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개도국 포기, 농업피해 없다는데...믿어도 될까





정부가 앞으로 있을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고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미국이 개도국 지위를 박탈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가운데 중국이 한국을 방패막이 삼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습니다. 미국 대 중국의 싸움이 자칫 미국 대 한국의 싸움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인데요. 당장 다음 달 자동차 관세 문제, 내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미국과 얽힌 현안이 산적한 점을 고려하면 반드시 피해야할 구도라는 게 정부 입장입니다.

농업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새로운 협상이 시작되면 기존에 누리던 조건을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정부가 업계와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불만도 적지 않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농민들의 우려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한국은 1995년 WTO에 가입하며 개도국 지위를 주장했지만 이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농업 분야 외에는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농업 부문에 예외를 두면서 선진국 3분의 2 수준의 의무만 이행하는 우대를 받게 됐습니다. 농산물 가격 유지를 위해 농가에 지원하는 보조금도 선진국보다 여유가 있고 쌀이나 고추 같은 작물에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관세를 매길 수 있는 이유입니다. 농민들은 향후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는다면 이 같은 혜택을 더는 누릴 수 없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확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설사 명목상 피해는 클지라도 향후 협상 자체가 타결될 가능성이 낮다면 실제 피해 규모는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겁니다. 한국은 그간 다자간 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UR)에 따라 농업 부문에서 개도국 혜택을 누려왔는데 이는 UR을 대체할 새로운 다자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유효합니다. 헌데 UR 이후 새로운 다자간 협상으로 주목받던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 협상은 10년 넘게 중단된 상태입니다.

정부는 만에 하나 DDA가 덜컥 타결될 상황에 대비해 안전 장치까지 마련해뒀습니다. 미국은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미래에 있을 협상에서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더는 주장하지 않기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정부는 미국이 주장하는 ‘현재’ 진행되는 협상의 범주에 DDA가 포함되지 않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DDA 논의가 기적처럼 재개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DDA에서 우리의 개도국 지위를 고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입니다.

DDA가 아닌 제 3의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 역시 높지 않다는 게 정부의 판단입니다. 협정이 타결되려면 모든 회원국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데 중국 등이 개도국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며 아니꼽게 보고 있는 미국이 동의할 리가 없다는 게 이유입니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중국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중국을 견제할 것인 만큼 다자간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지금이 아닌 향후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성사 가능성이 극히 낮은 새로운 협정 때까지는 UR에 따른 혜택을 누리겠다는 것이죠.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농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결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새로운 협상이 아예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다소 시간이 걸리겠죠. 그전까지 보조금 의존 등에서 벗어나 농업의 자체 경쟁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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