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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정책홀대에 직업계高 정체성 흔들… "교육·고용정책 연계해야"

<겉도는'선취업 후진학'제도>

취업률 하락에 신입생 확보 비상

대학 진학률은 높아져 취지 무색

文정부 학사일정 학습중심 변경

인력 전문성 상실 악영향만 초래

기업수요 반영 맞춤교육 늘리고

산학연계 생태계 조성 서둘러야





심각한 청년 실업 문제를 해소하자면 수요자 중심으로 교육정책의 근본적인 틀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채용박람회에 몰린 특성화고 학생들이 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서울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서는 본격적인 입시철을 맞아 교사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70여명의 교사들은 수업을 거의 제쳐놓고 각자 할당된 중학교를 찾아가 신입생 유치 설명회를 갖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교육당국의 지침도 무시하고 재학생들을 동원해 학교 홍보활동에 나서고 있다. 신입생 유치에 사활을 건 특성화고마다 학교를 널리 알려야 한다며 별도의 홍보전담부서까지 만들 정도다. 이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학생 수를 채우기가 불가능하다고 교사들은 하소연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 속에 특성화고의 신입생 모집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지 오래지만 올해는 더욱 심각하다. 가뜩이나 학생들이 외면하는 가운데 고등학교 무상교육까지 겹쳐 특성화고의 메리트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특별전형을 통한 모집비율이 85%에 달하고 있다. 일반전형으로는 신입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직업계고 취업률은 한때 50%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올해는 34.8%로 지난 2011년 이후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대학 진학률은 오히려 높아져 특성화고의 설립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교장들이 대학 진학을 공공연히 부추기고 아예 입시준비반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특성화고가 대학 진학을 위한 또 다른 창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특정 분야 인재와 직업인 양성을 목표로 세워진 특성화고가 급격한 환경 변화에 휩쓸려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고졸 취업 문제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높다. 교육당국의 일관된 정책 부재가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트리고 학생들의 외면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금형공장을 운영하는 박모 사장은 지난해 현장실습생을 쓰느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 교육당국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잦은 감독을 받느라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게다가 최저임금까지 올라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올해는 더 이상 실습생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박 사장은 “당장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기술력도 없는데 까다로운 충족요건을 누가 맞출 수 있겠느냐”며 주변에도 포기하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실제 현장실습 참여기업은 2016년 3만1,000곳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30% 수준인 9,500여곳에 머물렀다.

교육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안전사고를 이유로 충분한 고민 없이 직업계고의 현장실습을 줄이고 학습 중심으로 바꾼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뒤늦게 문제점을 깨닫고 현장실습을 강화하기로 했지만 정책 실패의 후유증은 너무 크다. 직업계고의 특성상 채용연계형 현장실습이 없다면 기업들이 선뜻 채용에 나서기 힘들다는 얘기다. 고3 학생들이 2학기까지 수업을 받도록 의무화한 것도 단지 학사일정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산업계의 수요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이는 결국 기능인력의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올 8월 말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중국과 러시아에 밀려 3위로 떨어진 것도 기능인력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했다. 1977년 이후 19차례나 1위를 했던 한국은 기계설계나 CNC밀링·선반 등 제조업 분야에서 저조한 성적을 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추격이 워낙 거센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정부의 무관심과 기능인력 홀대를 문제점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 회장을 지낸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정부의 정책 홀대와 기업 옥죄기가 기능인력 지원 축소로 이어진 측면이 크다”면서 “앞으로 2등을 지켜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국제대회를 통해 특성화고의 문제점을 새삼 느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성화고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고 뛰어난 인재들이 산업현장을 꺼리는 현재의 풍토에서는 우리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추락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직업계고를 핵심으로 한 ‘선 취업 후 진학(학습)’ 제도가 도입 취지를 살려 하루빨리 활로를 되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만성적인 청년 취업난을 해소하고 인력 공급의 미스매치를 해소하자면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정부도 뒤늦게나마 고졸 취업자 지원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관계부처 협의체를 구성해 ‘선 취업 후 진학’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오는 2022년까지 직업계고 취업자 비율을 6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일자리창출촉진자금 지원이나 인증제 신설 등 미봉책에 머물러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높다. 교육당국이 전문인력 양성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취업연계장려금 식의 현금 살포로 때우려는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일·학습병행제를 도입해 도제학교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시민단체들이 학생 인권을 앞세워 반대하고 있어 난항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현장의 다양한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교육과정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전문 업체인 POP컨설팅의 김남민 대표는 “기업들이 대학과 손잡고 교육과정을 개설했다가 현장의 요구와 맞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기업과 학교의 다른 눈높이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학들이 입학생 확보만을 목적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다 보니 기업들의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학들이 야간이나 주말 강좌 위주로 교육과정을 만드는데다 직무와의 연계성이 부족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산업현장에 필요한 인재 육성을 위해 교육정책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병욱 충남대 교수는 “프랑스 정부가 최근 개혁작업을 추진하면서 유연안정성을 핵심으로 설정하고 직업교육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경제정책과 일자리정책을 같이 가져가되 한국에 가장 적합한 모델을 찾으려는 고민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교육제도가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고용 시스템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움직이는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과거 학부모들로부터 정권이 바뀌면 직업계고 정책도 달라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많이 들었다”면서 “수요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도록 교육정책의 일관성을 중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육계에서는 정책의 한 당사자인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맞춤형 인력 양성을 목표로 활발한 산학연계를 통해 새로운 인력 양성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 간의 칸막이부터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주명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직업교육의 흐름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면서 “부처마다 분산된 교육 분야를 통합하고 정책적 사업방향을 제시하는 전담기구를 총리실 직속으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심각한 청년 실업 문제를 해소하자면 수요자 중심으로 교육정책의 근본적인 틀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채용박람회에 몰린 특성화고 학생들이 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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