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금리인하 약발 제대로 안먹혀…한국경제 '유동성 함정' 논란

[내일 금통위 기준금리 결정]

올 정기예금에 55조 이상 뭉칫돈

금리 떨어졌는데 10분기째 늘어

화폐유통속도도 0.7 아래로 최저

돈맥경화 현상에 소비·투자 최악

"통화정책이 만능 해결책 안돼

부동산·노동 등 구조개선 필요"

이주열(왼쪽)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한은 국정감사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16일 기준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하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거세다. 경기침체가 이어지다 보니 경제주체들이 돈을 움켜쥐고 있어 민간소비와 기업투자가 늘지 않는 악순환에 휘말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현행 1.5%인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리더라도 소비와 투자를 견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경기부양의 한 축인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영해도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은행예금에 몰리는 돈=대외 불확실성 증가와 국내 경기 부진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자금이 은행으로 몰리면서 정기예금 잔액이 10분기 연속 증가했다. 기업이나 가계 할 것 없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불안심리 때문에 무작정 은행에만 맡겨놓고 보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9월 말 정기예금 잔액은 653조9,15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8월과 비교해 1조9,787억원 늘어났다. 2017년 2·4분기 이후 10분기 연속 증가세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인 2009년 3·4분기부터 13분기 연속 늘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번째 장기 기록이다. 올해 들어서만 55조5,280억원이 정기예금으로 몰려 지난해 신규 유입된 정기예금 53조2,00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15일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은행권의 정기예금의 금리(1년 미만 기준)는 올해 1월 평균 2.01%에서 꾸준히 떨어져 8월 평균 1.50%를 기록했다. 정기예금·정기적금 같은 상품으로 이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이를 대체할 투자처가 없다 보니 예·적금에 돈이 계속 몰리는 형편이다. 주식시장에서도 머니마켓펀드(MMF)와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같은 단기 부동자금에 쏠림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7월 말 기준 단기 부동자금은 1,120조원으로 지난해 말 1,092조42억원을 기록한 후 1,100조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가 주식으로 굴린 돈은 많이 늘어나지 않았고 대신 예치금이 불어나고 있다”며 “가계가 안전자산을 늘리는 쪽으로 자금을 운용하면서 예·적금과 MMF에 자금 쏠림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돈이 안 돈다…화폐유통속도 최저=시중에 돈이 안 돈다. ‘돈맥경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올해 2·4분기 화폐유통속도는 0.68에 그쳤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후 0.7 아래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화폐유통속도는 화폐 1단위당 국내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몇 번 사용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시중통화량(M2)으로 나눠서 구한다.

한은이 1원을 공급했을 때 시중에 몇 배에 달하는 신용이 창출되는지를 나타내는 통화승수는 올해 처음으로 15배 수준까지 떨어졌다. 화폐유통속도와 통화승수가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금을 움켜쥐고 소비와 투자를 꺼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들의 투자심리 위축은 심각한 수준이다. 제조업 부문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중 설비투자 실적은 9월 기준 92로 2월 95에서 3포인트 하락했다. 6월 현대경제연구원이 11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하반기 기업 경영환경 전망에서도 “하반기 투자를 상반기보다 늘리겠다”는 기업 비중은 35.4%에 불과했고, “향후 투자여건의 개선 가능성이 부정적”이라는 응답은 65.7%에 달했다. 이날 한국경제연구원은 ‘기준금리 인하의 거시적 실효성 점검 보고서’에서 “현재 한국 경제는 금리의 파급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부동산시장 안정화 등 미시적 정책들로 인해 금리 인하의 효과가 소비나 투자 진작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금리 인하로는 한계=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경기부양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현재 1.50%로 낮은 수준임에도 소비나 투자와 같은 실물부문이 아닌 자산시장으로 유동성이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통위의 한 관계자도 “통화정책이 만능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부동산 정책과 노동시장 구조 개선 등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정책과의 호흡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경제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함준호 연세대 교수는 “명목금리를 제로금리에 가깝게 낮춰도 경제주체들이 물가가 더 하락할 것이라고 보면 실질금리는 내려가지 않아 금리 인하 효과가 없다”며 “더욱이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유럽·미국처럼 기축통화국도 아니어서 마이너스 금리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