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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돼지 흑사병' 번지는데 방역당국은 뒷북만





최근 생소한 이름의 가축 전염병 하나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즐기는 서민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ASF)인데요, 아직 개발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치사율이 100%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돼지 전염병입니다. ‘돼지 흑사병’으로도 불립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가 “병이 퍼져 생산량이 감소하고 (ASF가 전역에 퍼진) 중국 영향으로 수입량마저 줄면 가격이 폭등하면서 지금 우리가 먹듯이 국내산 냉장 생삼겹살을 두툼하게 썰어 구워먹는 것은, 회복되는 30여년 간 힘들 것”이라고 할 정도로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따르면 ASF가 처음 보고된 것은 지난 1921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입니다. 이후 전 세계 52개국에서 발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창궐했고 지난 5월 북한 내 중국 접경지역인 자강도 협동농장까지 전파됐습니다. 그리고 4개월이 흐른 지난 17일, 결국 돼지 2,369마리를 사육하는 경기도 파주시 연다산동 농장에서 국내 최초 확진 판정이 나왔습니다.

차량과 사람, 야생 멧돼지 등의 직접 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진 ASF는 북한 접경 지역인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27일 오후 10시 현재까지 총 아홉 군데에서 확진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이 가운데 5곳이 인천 강화군에서 발생했습니다.

정부는 방역 당국인 농림축산식품부를 중심으로 확산 방어에 총력전을 펴고 있습니다. 방역 당국은 발생 농가로부터 500m 내에 있는 돼지 농장에서 사육 중인 돼지를 모두 살처분 해야 하는 규정을 확대 적용해 3㎞ 내 모든 돼지를 살처분 하고 있습니다. 박병홍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예방적 살처분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정향 건국대 수의과대 교수는 “현재로서는 비용이 들더라도 최대한 적극적으로 살처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런 점에서 정부의 선제적인 살처분 노력은 칭찬할 만합니다.

27일 오전 10시 기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농가 간 거리./사진제공=농식품부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는 경기도 파주에서 1차 ASF 확진 판정이 나오자 곧바로 48시간 전국 일시이동중지 명령(standstill)을 발동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국 가축 차량 등의 이동이 중지됐습니다. 도매시장이 열리지 않아 돼지고기 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했지만, 방역 당국으로서는 48시간 동안 농가와 도로를 소독할 시간을 벌였습니다.

아쉬운 대목은 19일 일시이동중지 명령이 해제된 다음입니다. 잠복기가 4~19일로 긴 ASF 바이러스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당국은 일시이동중지 명령을 그대로 해제했고, 23일 경기 김포시 통진읍 농가에서 3차 확진 판정이 나오자 24일에서야 다시 발령했습니다. 그것도 전국이 아닌 경기·강원·인천 3개 지역에 국한했습니다. 이후 경기도 파주 적성면(24일·4차)과 인천 강화군 송해면(24일·5차)까지 번지고 나서야 전국에 이동중지명령을 재발령했고, 인천 강화군 불은면(25일·6차), 인천 강화군 삼산면(26일·7차)까지 확산하자 이를 다시 48시간 추가 발령했습니다. 초기 확산을 막기 위해 돼지고기 가격 상승(현 시세는 평년 대비 낮은 수준)을 감내하더라도 방역을 최우선에 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현수(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상황실에서 이낙연(오른쪽) 국무총리에게 방역 현황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부처 간 공조가 유기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입니다. 국정원은 지난 24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ASF가 북한 전역에 확산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고했습니다. “평안북도에 돼지가 전멸했고, 돼지고기가 있는 집이 없다는 불평이 나올 정도”라는 게 국정원 설명입니다. ASF 바이러스가 휴전선 바로 위까지 내려왔음에도 방역 당국인 농식품부는 이러한 내용을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북한 전역에 확산했다는 사실을) 언론 매체를 통해 알았다”고 했습니다. 환경부는 올해 야생 멧돼지 사체 34마리를 발견해 ASF 감염 여부를 확인했다고 여당에 보고했는데, 정작 농식품부는 멧돼지 사체가 발견된 적이 없다고 보고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예방을 위한 혈청검사도 혼란을 겪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3일 경기 김포시 통진읍 농장에서 3차 발병이 확인됐는데, 이곳은 사흘 전인 20일 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났던 농장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곳은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이 상황 점검 차 방문하기도 했던 농장입니다. 방역 당국은 “샘플 검사의 한계”라고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경기 북부 지역에서 집중 발생하고 있는 ASF가 수도권 지역으로 남하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삼겹살이 금(金)겹살이 돼 돼지고기 사 먹기가 겁나는 것을 넘어, 안 그래도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더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내수를 더 쪼그라뜨리고 우리 경제를 더욱 긴 불황의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방역 현장에서 밤낮없이 사투를 벌이는 당국자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ASF의 국내 창궐을 막아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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