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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여는수요일] 슬로슬로우 퀴퀵

- 오광수

어느 가을날 지리산 등성 어디쯤서 반달곰과 딱 눈이 맞는다면 마늘 몇 쪽 갖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 녀석과 살림 차려야지. 그 계곡 어디쯤서 날다람쥐 한 마리 만난다면 쳇바퀴 굴리듯 한세상 돌고 돌아야지. 가을 햇볕에 천천히 가슴을 데우다가 마침내 비등점에 오르면 붉게 붉게 타올라야지. 붉은 마음이 식어 하얀 재로 남으면 팔랑거리며 눈이 되어 내려야지. 사람도 한 그루 나무인 그 산에서 네 편 내 편도 없이 한세상 환하게 살아야지. 어느 날 또 내가 마침내 죽음과 눈이 딱 맞는다면 슬로슬로우 퀴퀵 춤을 춰야지. 반달곰 가슴을 팍팍 치면서 나 없어도 잘 살아 얘기해야지 도토리 점심을 주면서 다람쥐한테도 안녕 해야지. 사는 일이 슬로슬로우 퀴퀵이라고 계곡물에게도 알려줘야지.

모두들, 서두를 것 없이 숨을 몰아쉬면서 슬로슬로우 퀴퀵.







늑대와 춤추고 곰과 사돈 맺던 시절 있었다지. 네가 아프면 내가 울고, 내가 기쁘면 네가 웃던 시절 있었다지. 개울물과 뱀과 개가 꼬리를 바꿔달며 굼실살랑거리던 시절 있었다지. 너와 내가 구분되지 않아 전쟁이 발명되기 전이었다지. 사람들은 너와 나를 구분하더니, 수많은 너를 그것으로 만들었다지. 그것이 된 너희는 세상을 떠나 별이 되고 있다지. 시인은 물정 몰라라. 마늘 몇 쪽 혼수로 천연기념물 신부에게 장가들려 하다니. 쑥 한 뭇 부조할 테니 모든 그것들을 다시 너로 바꾸는 신화의 딸을 낳으시라. 삶이 춤이라면 죽음은 멈춤이니 슬로슬로우 퀴퀵~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는 한세상 다시 열으시라.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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