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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악화일로' 韓日 관계 또 다른 복병은 '정부 비밀주의(?)'





일본 정부는 지난 7월1일부터 같은 달 24일까지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 이른바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에 대한 자국 내 의견수렴을 받았습니다. 최근 일본 전자정부종합창구에 해당 의견수렴 결과가 공개됐는데요. 총 4만666건의 가운데 한국의 백색국가 지정 제외에 찬성하는 의견이 95%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반대는 다 합쳐 1% 정도에 그쳤습니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일본 내에 팽배했다는 의미겠죠. 이는 결국 지난달 28일 일본 정부의 ‘한국 백색국가 제외’ 시행의 근거가 됐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왜 정부의 방침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지’, ‘일본 기업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시행 시점은 언제가 적당한지’ 등 의견을 종류별로 분류해 각 항목에서 몇 가지 의견을 추리고, 해당 의견에 대한 정부의 입장까지 함께 곁들이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한국이 일본의 제도를 악용해 정밀기기를 북한에 빼돌리고 있다’며 한국의 백색국가 제외에 적극 찬성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억울(?)하기까지 한 찬성 이유라고 볼 수 있죠. ‘일방적으로 한국에만 제공했던 특례를 철폐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은 국제조약과 국제법을 반복해서 무시하고 있다’처럼 사실과는 다른, 따라서 다소 감정적인 반응 역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정부 방침에 분명 찬성한다. 그러나 제도 시행의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달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수출관리를 둘러싼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무역관리령을 개정한다고 했는데, 이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확실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수출 관리·집행에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으므로 상세히 밝힐 수 없다’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부분인 듯합니다. 최근 한일 관계는 그야말로 ‘악화일로’입니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 백색국가 제외에 맞서 한국 정부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일본 백색국가 제외로 서로 ‘펀치’를 날리면서 강대강 대치 상황입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강경파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개각을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일본 국민은 복잡한 심경일 것입니다. 자국을 응원하는 마음이 크겠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래도 되는 것인지 불안한 마음도 있겠죠. 그래서 응답자의 55%가 “한국과 일본이 합의할 때까지 관계 개선에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답변(NHK 실시)한 설문조사가 있는가 하면, 79%가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쪽이 좋다”고 답한(민영방송 TBS 계열 매체 JNN 실시) 설문조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서울 중구청 관계자들이 일본의 우리나라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대한 항의 표시로 세종대로에 ‘노 재팬’ 배너기와 태극기를 설치하고 있다. 중구는 퇴계로, 을지로, 태평로, 동호로, 청계천로 등 관내 22개로에 태극기와 노 재팬 배너기를 설치한다./서울경제DB


이때 중요한 것이 정부의 역할 아닐까요. 국제통상 전문가이자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자문위원인 송기호 변호사는 “그러나 일본 정부는 (백색국가 제외 이유가) ‘개별 기업의 거래 내용’이라고 의견 검토절차에서도 공개 거부를 거부했다”며 “또 한국이 일본보다 더 엄격한 캐치올 규제를 하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을 자국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캐치올이란 무기 전용 가능성이 있는 전략물자를 무기 제조 가능성이 있는 국가에 수출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제도입니다. 일본 정부가 자국 국민의 ‘알 권리’를 충분히 보장했다면 ‘한국이 북한에 정밀기기를 빼돌리고 있다’는 오해가 정부 정책 시행의 근거가 되는 일도 없었겠죠.

그런데, 이게 일본 정부만의 문제일까요? 우리 정부도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3일까지 일본을 백색국가인 ‘가’ 지역에서 제외하고 신설되는 ‘가의2’ 지역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에 대해 의견수렴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의견수렴 내용은 물론 총 접수 건수도 밝히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입니다. 한 국회 관계자는 “고시 개정은 정부의 권한이기 때문에 비공개 방침 자체가 적법하지 않다고 보기 힘들다”면서도 “하지만 일본 백색국가 제외 등 전반적인 과정에서 정부가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고 꼬집었습니다. 자국 내에서 받은 의견수렴은 정부 정책의 근거인데, 아무리 행정부의 권한이라고 하나 이를 굳이 비공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한국이나 일본이나, 정부의 비밀주의에 양국 국민의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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