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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포터의 아기 토끼 이야기

피터 래빗 시리즈의 탄생

‘옛날 옛적에 아기 토끼 네 마리가 살았어요. 이름이 플롭시와 몹시·코튼테일, 그리고 피터였는데 아주 커다란 전나무 밑동의 모래 둥지에서 살았어요.’ 세계 36개국 언어로 1억5,000만여권이 팔렸다는 동화 ‘피터 래빗 이야기’의 첫 단락이다.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는 이 책으로 명성을 얻고 돈방석에 앉았다. 출판 시기는 1902년. 내용이 완성된 시기는 이보다 훨씬 전인 1893년 9월4일. 포터(당시 26세)의 편지에 피터 래빗의 이야기가 처음 나온다.

포터가 직접 그린 ‘피터 래빗 이야기’의 첫 삽화.




수신자는 노엘이라는 다섯 살 꼬마. 포터는 옛 가정교사의 아들이 병석에 누웠다는 말을 듣고 그림을 곁들인 편지를 보냈다. ‘어떤 말부터 할까 생각하다가 네 마리 아기 토끼 얘기를 들려주기로 했단다. 그 토끼들의 이름은…(하략)’으로 시작한 포터의 편지에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빠져들었다. ‘출판하면 좋겠다’는 권유가 쏟아졌으나 포터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버섯 연구.

재산가이며 변호사인 부친 밑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포터는 동물과 자연에 대한 관찰에 심취하며 자랐다. 야생버섯을 연구해 1897년 ‘버섯 같은 균류 중 일부 종은 발아하기 위해 다른 생물과 공생관계를 이룬다’는 소논문을 생물분류학의 최고 권위인 린네학회에 발표했으나 가볍게 묵살당했다. 아마추어 여성이라는 편견 탓이다(70년 세월이 지나 그의 연구는 논문으로 편찬되고 100년 후 린네학회는 과오를 인정했다).



성차별의 벽에 막힌 포터는 문학에 눈을 돌렸으나 막상 출판업자가 나서지 않았다. 결국 자비로 ‘래빗 이야기’를 250부 찍었다. 반응이 좋아 200부를 더 인쇄할 무렵 아기 토끼의 실제 모델인 피터 래빗이 죽었지만 희소식도 날라왔다. 출판업자가 나선 것. 1902년 10월 인쇄된 초판 8,000부가 바로 동났다. 포터가 지은 동물 이야기 연작은 세계에서 2억부 이상 팔렸다. 큰돈을 모은 포터는 가족 휴양지였던 레이크 디스트릭트 지역이 개발된다는 소식에 부동산에 돈을 쏟아부었다.

차익을 노린 게 아니라 개발을 막기 위해서다. 인생 후반부를 농부로 살다 77세에 죽은 포터는 500만평의 땅을 ‘내셔널트러스트’에 기부하며 “보존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수선화’와 ‘무지개’를 지은 윌리엄 워즈워스가 영감을 얻고 존 러스킨이 환경보존을 외쳤던 영국 북서부 윈더미어 호수와 주변 삼림이 이 덕분에 개발 광풍을 피해 살아남았다. 호기심 많은 아기 토끼 피터 래빗을 내세워 포터가 지킨 땅은 영국인들의 자랑이자 소중한 유산이다. 부럽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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