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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권력의 추한 단상, 서울호 사건

1973년 靑·중정의 암중 투구

작약도 선착장의 현재 모습. /인천시 홍보동영상 캡처




1973년 8월29일 새벽 3시45분, 인천 외항. 4,000톤 화물선 서울호가 작약도 선착장에 올라앉았다. 적재했던 화물은 일본산 현미. 갑문식 선거가 완공(1974년)되기 전이어서 닷새 전부터 작은 배들이 서울호를 오가며 쌀을 날랐다. 하역 닷새째인 28일 정오에 발효된 폭풍주의보에도 작업이 계속되고 선장은 저녁 무렵 육지에 내렸다. 하역작업이 끝난 밤 11시30분, 일등항해사도 잠자리에 들었다. 주의보가 폭풍경보로 바뀌고 폭우와 풍랑이 거세지자 일등항해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 허사. 작약도 선착장에 승양(昇壤·육지로 좌초)되고 말았다.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된 서울호는 결국 전손 처리되고 말았지만 예기치 않은 갈등과 잡음이 뒤따랐다. 먼저 상인들이 들고일어났다. 거대한 화물선이 선착장에 드러누워 있어 관광객이 오지 않는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선주인 조양상선의 반응은 배상 불가. ‘여름철 장사가 끝났는데 무슨 얘기냐’며 거절했다. 일은 이때부터 꼬였다. 상인들의 도움 요청을 받은 예인선 업자 L씨는 말로는 해결이 안 된다며 조양상선 관계자를 납치·감금해버렸다. 조양상선이 인맥을 통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중정 인천지부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L씨도 만만치 않았다. 부친이 해방 전 해주에서 검사로 재직할 만큼 유력 가문의 자제이며 본인도 유격부대 출신인 그는 배짱과 의리로 인천 주먹계를 주름잡던 인물. 중앙 정계에도 통하는 인물이 많던 L씨는 청와대 특명반에 기대어 위기를 넘겼다. 중정이 국익을 앞세워 조양상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매듭지려 하자 L씨는 전문가 K씨를 찾았다. 해양대 3기 졸업생으로 프랑스선급협회 회원이던 K씨는 이후락 부장에게 ‘왜 민간인들의 민사 분쟁에 부당하게 개입하느냐’는 요지의 공개서한을 보냈다. 김종길 전 부산해운항만청장의 저서 ‘되돌아본 해운계의 사실(史實)들’에 따르면 중정은 K씨가 한국을 떠나도록 압력을 넣었다.

결국 사건은 미국으로 영구 추방당한 K씨가 구상했던 보상금 3,600만원의 3분의1인 1,200만원을 조양상선이 지급하는 선에서 매듭됐다. 사건은 간단하게 끝날 수도 있었다. 선체보험과 선주상호보험(P&I)을 활용하면 피해액을 보험금으로 받을 수도 있는 사안이었지만 권력기관을 앞세우려다 일을 그르쳤다. 서울호 사건은 정의와 법 위에 군림하던 권력이 만들어낸 지난날의 소극(笑劇)일 뿐일까. 정도를 벗어난 특혜와 특권은 잠시 달콤하더라도 언제나 위험하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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