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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957년 소련, 세계 첫 ICBM 발사

美핵전력 단숨에 따라잡아

러시아 사마라 우주박물관에 있는 R-7로켓.




1957년 8월27일 소비에트연방 타스통신과 모스크바방송이 ‘초장거리 유도탄 시험 발사 성공’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서방 진영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이틀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과장됐다’고 단언했다. 소련이 터무니없는 과장 선전을 늘어놓은 경우가 많았지만 타스통신의 보도는 사실이었다. 실제 시험 발사 날짜는 8월21일. 소련은 발사 직후부터 고무됐으나 며칠간 탄착군과 초속 종속 등을 파악한 뒤 성공을 세계에 알렸다. 세계 최초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련의 신중함과 서방 진영의 의구심에는 ‘예상보다 빨리 성공했다’는 공통 분모가 깔려 있다. 미국의 당시 공군 장관은 ‘소련이 ICBM을 개발한다지만 4년 안에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최소한 8년 걸린다는 전문가도 있었다. 소련이 관련 기술 개발에 본격 착수한 것은 2차 세계대전 말. ‘최초의 전략 미사일’인 V-2 로켓과 생산설비를 노획하고 독일 과학자들을 데려가면서부터다. 1950년대 초중반부터 소련 수뇌부의 ICBM 개발에 대한 독촉은 더욱 심해졌다. 미국과 전략폭격기 격차가 더욱 벌어졌기 때문이다.



불시착한 미국의 B-29 폭격기를 분해해 역설계한 T-4 폭격기마저 채 보급되지 않은 판에 미국은 B-52 폭격기 생산, 배치에 들어간 상황. 미국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략자산 부문을 일거에 잡을 수단으로 소련은 국방비의 5% 이상을 ICBM 개발에 쏟았다. 겨우 제작된 R-7 세묘르카 로켓은 첫 발사인 1957년 5월 400㎞ 상공을 지나자마자 떨어졌다. 6월의 두 번째 시험발사는 배관 이상으로 아예 발사가 취소됐다. 7월 세번째 발사에서는 33초 후 폭발했다. 네 번째 발사인 8월에서야 R-7 로켓은 6,000㎞ 이상을 날았다.

경쟁에서 뒤졌다는 자존심 때문인지 R-7 로켓을 애써 외면하던 미국은 한 달 보름 뒤 충격에 빠졌다. 소련은 최초의 대륙간탄도탄을 쏜 추진체인 R-7 로켓으로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10월4일 쏘아 올렸다. 소련은 한 달 뒤 ‘스푸트니크 2호’까지 발사하며 기술적 자신감을 드러냈다. 소련이 시작한 ICBM 경쟁의 결말은 익히 아는 대로다. 뒤졌던 미국은 고체 연료와 다탄두탑재형 ICBM, 잠수함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SLBM)을 연달아 개발하며 선두를 낚아챘다. 군축이 몇 차례 진행됐어도 인류는 아직도 지구를 수십 번 파괴하고도 남을 위력을 지닌 핵무기를 깔고 숨 쉰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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