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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만필] 미코노스의 추억

■서구일 모델로피부과 원장

팽팽했던 첫 보톡스의 느낌처럼

20년전 첫 방문때의 감흥·설렘

이젠 잦아든 대신 자연스러워져

익숙함 속에서도 만족감 누려





가족들과 여름휴가차 그리스 남쪽 섬 미코노스에 왔다. 미코노스는 1999년 처음 방문한 이래 두 번째다. 20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코발트 빛 파란 하늘과 대조를 이룬 흰색 지붕과 새하얀 벽이 눈부셨고 파란색 창문마다 내걸린 붉은색 부겐빌레아 꽃은 흰색 바탕을 대비로 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람이 겨우 왕복할 수 있는 삐뚤빼뚤한 작은 골목길에 가득 찬 상점이며 음식점이 신기했고 골목을 돌면 또 나오는 골목길에 끝없는 미로를 헤매는 현기증도 들었다. ‘리틀 베니스’의 어느 식당 바로 옆에서 넘실거리는 파도와 거리를 배회하는 명물 펠리컨을 보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그 풍경과 함께 즐기는 페타치즈와 야채를 버무린 그리스식 샐러드, 물을 섞으면 색깔이 하얗게 변하는 그리스 전통주 ‘우조’를 곁들여 먹었던 해산물 요리도 일품이었다. 게이비치 혹은 누드비치로 유명한 파라다이스 비치에는 수많은 이들이 젊음을 뽐내며 일광욕을 즐기는 반면 2000년 전 고대 그리스 폐허만 남은 유적지 딜로스섬의 쓰러진 아폴로 신전 기둥 위에는 도마뱀들만 따가운 햇볕을 한가로이 즐기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로 인해 미코노스 재방문은 내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됐고 올해 소원성취했다.

20년이 흐른 지금, 언덕 위에 우뚝 선 5대 명물 풍차는 여전히 힘차게 돌아가고 있고 코발트 빛 에게해를 품은 미코노스도 눈부신 순백색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옛날 기억 속의 파라다이스, 감동의 미코노스는 더 이상 아니다.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1999년 미코노스 방문이 필자에게는 두 번째 유럽여행이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계 30여개 이상의 국가를 방문해 수없이 많은 풍경을 마주했다. 지중해 몰타섬의 수더분한 황토색 골목길, 카프리섬의 화려한 골목길, 프로방스 지방의 아름다운 골목길…. 그곳들을 누비는 동안 미코노스에 대한 설렘과 감흥이 잦아든 것 같다.





처음 마주했던 설렘과 감흥이 잦아드는 것은 보톡스 시술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보톡스도 계속 반복해서 맞다 보면 처음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는 것 같다며 혹시 내성이 생긴 것 아닐까 걱정하는 고객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그럴 가능성은 0.1%도 안 되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 짜릿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한다. 필자도 처음 보톡스를 맞아봤을 때 미간과 이마주름이 쫙 펴지면서 찡그려도 주름이 안 잡힐 뿐 아니라 가만히 있을 때도 피부가 팽팽해져 마치 풀로 붙여놓은 듯 답답한 느낌마저 있었다. 그런데 몇 번 맞다 보니 주름은 확실히 덜 잡히는 것 같은데 그 느낌에 적응이 됐는지 이제는 거의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기억이 생성되는 과정을 보면, 우리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각종 정보나 경험이 측두엽 부위에 위치한 해마라는 단기기억저장소에 임시 보관됐다가 그중 일부만이 장기기억장소인 대뇌피질로 옮겨진다. 어떤 경험이 기억으로 남는 것은 신경세포 간 연결 부위인 시냅스가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인데 학습을 반복할수록 혹은 처음 경험하거나 강렬한 감정이 동반됐을 경우 시냅스가 커지고 강화돼 기억이 오래 남는 것이다. 그래서 보톡스도 키스도 처음의 느낌이 강렬하고 감동으로 오래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미코노스 여행에 실망한 것은 아니다. 난생처음 경험한 새로운 풍광에서 오는 감흥이 없었다 뿐이지 기대를 저버린 것은 아니었다. 둥근 지붕마저 하얀 그리스정교회 건물과 흐드러지게 핀 붉은색 부겐빌레아, 파란색 창문틀과 계단 난간으로 이어진 미로 같은 흰색 골목길을 한참 동안 헤매고 다니다 보니 마치 예전에 많이 와본 것 같은 익숙함마저 느끼게 했다. 거기다 에게해를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는 일몰에 와인의 원조라 할 그리스 와인과 부드러운 문어다리 구이며 마늘과 각종 허브를 넣은 요구르트 소스, ‘차치키’도 이번 미코노스 여행에 새로움까지 더해줬다. 보톡스도 내 인생도 새로 리셋할 수는 없기에 미코노스처럼 익숙함만으로도 남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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