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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동포 품은 '페치카 최재형 선생' 애국魂 기리다

최재형 선생 기념비 러시아서 제막
연해주서 활동한 '독립운동 대부'
학교·교회 세워 고려인 교육 힘써
상해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 역임
일본군에 체포돼 1920년4월 순국

연해주 동포 품은 '페치카 최재형 선생' 애국魂 기리다
12일(현지시간)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기념관에서 오성환(왼쪽 세번째부터)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안민석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장·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최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 등 참석자들이 제막식을 갖고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한민구기자

연해주 동포 품은 '페치카 최재형 선생' 애국魂 기리다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세워진 최재형 기념비

연해주 동포 품은 '페치카 최재형 선생' 애국魂 기리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12일(현지시간) 오후 4시경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선생의 고택. 숙연한 분위기 속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고(故) 최재형 선생의 기념비 제막식이 열리는 자리였다. 그는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체포돼 순국해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지만 묘지나 기념비 하나 없이 잊힌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날 99년만에 다시 후손들에게 부활한 듯 했다. 빗방울이 추적추적 떨어지며 하늘도 고인을 추모하는 듯 했다. 추모 공연에서는 내년 순국 100주년을 앞두고 만들어진 추모곡 ‘자유의아리아’를 테너 박주옥 교수가 불렀고 창원국악관현악단이 특별공연을 했다. 참석자들은 최재형 장학생인 바이올리니스트 닐루파르 무히디노바의 연주 속에 100여 송이의 국화를 헌화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정병헌 현충시설과장의 건립 축하 대독을 통해 “지난 100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해 희망의 미래 100년을 다짐하는 것처럼, 최재형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유공자의 희생과 헌신, 그 뜨거운 애국심 역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선생은 일제 강점기 당시 추운 조국의 현실에 따뜻함을 전해준 ‘페치카(러시아어로 난로)’”라며 추모했다.

이번 추모비는 8·15 광복절과 내년 순국 100주년을 앞두고 건립됐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순국 100주년 추모위원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외교부,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등이 후원했다. ‘최재형 독립운동기념관’ 경내에 설치된 추모비는 그의 염원이던 대한민국 광복을 형상화해 한반도 모양으로 건립됐다. 태극기 문양이 그려진 비석 우측 상단에는 ‘애국의 혼 민족의 별 최재형’이란 문구가 새겨졌다. 비석 앞쪽에는 최재형 선생의 흉상이 설치됐고 아래에는 그가 실천한 항일 독립운동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활동상이 한글과 러시아어로 각각 쓰였다.

제막식에는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추모위 공동대표와 선생의 손자인 최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장 등 관계자 100명이 참석했다. 안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지난 100년 동안 묻혔던 위대한 독립운동가가 부활하는 날”이라고 추모했다. 소 이사장은 “추모비 건립이 너무 늦었다”며 “일본군의 총격으로 쏟아지는 붉은 선혈을 움켜잡으면서도 조국의 광복을 생각한 그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란다”며 소회를 밝혔다. 이에 최발렌틴 회장이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대한민국 만세”라고 짧게 답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최재형 기념비는 연해주 지역에 위치한 ‘신한촌기념비’ ‘이상설유허비’ ‘안중근의사단지동맹비’ 등 독립운동 유적과 연계해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및 역사교육 장소로 활용된다. 추모위는 내년 순국 100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추모음악회, 국제 심포지엄, 다큐멘터리·출판 기념회, 사진전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연해주 동포 품은 '페치카 최재형 선생' 애국魂 기리다
12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최재형 고택에서 열린 기념비 제막식에서 오성환(왼쪽부터)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최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선협회 회장 등이 헌화 후 묵념하고 있다./사진=한민구 기자

연해주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은 선생에 의지하며 ‘페치카’로 불렀다.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러시아 지진허로 이주해 군납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이후 30개가 넘는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한인 교육에 앞장섰다. 1908년에는 동의회를 조직해 독립 자금을 지원하고, 대한의군에 무기와 숙식을 제공했고 1909년 민족신문 대동공보 사장, 1911년 권업회 총재로 활동하며 항일 운동을 이어갔으며 안중근 하얼빈 의거의 후원자로 재조명받고 있다. 1919년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과 상해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선임됐다. /우수리스크(러시아)=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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