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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이 풀어내는 한민족의 기원] 정차역마다 독립운동 발자취..기적소리에 서린 항일·애환

<8>바이칼호수로의 4,500km 대장정

블라디보스토크역에 시베리아의 광활한 벌판을 달리던 옛 모습의 증기기관차가 전시돼 있다. 역에는 이곳이 시베리아횡단철도의 기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푯말도 함께 서 있다.




10여년 전 항공편으로 러시아의 ‘이르쿠츠크’로 가서 바이칼호수를 방문했는데 이번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행자들의 로망인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로 가서 바이칼호수와 올혼섬을 찾기로 했다. 이 열차는 ‘모스크바’까지 9,288㎞를 달리는데 이르쿠츠크까지는 33개 역 4,107㎞를 72시간에 걸쳐 간다. 고조선 이래 오랫동안 한민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만주 지역의 외곽을 연접해 달리는 구간이어서 더욱 설레는 여정이었다.

지난 1907년 이준·이상설 등 헤이그 특사사건의 주인공들은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하기 위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다. 1909년 안중근 의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가서 거사를 일으켜 한국인의 독립투쟁을 세계에 알렸다. 당시 열차는 만주를 통해 시베리아로 연결됐다고 한다. 1914년 이 열차를 타고 바이칼호수까지 갔던 춘원 이광수는 ‘유정’에서 “가도가도 벌판, 서리 맞은 풀바다. 실개천 하나 없는 메마른 사막. 어디를 보아도 산 하나 없으니 하늘과 땅이 착 달라붙은 듯한 천지…”라고 썼다. 1936년 손기정 선수는 이 횡단열차를 타고 베를린올림픽 출전 길에 올랐다. 그는 일본에서 부산·경성(서울)을 거쳐 군수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지나 2주일 만에 베를린에 당도했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시베리아횡단열차로 달린 72시간

헤이그특사부터 안중근·손기정 등

블라디보스토크 곳곳에 선열 흔적

연해주 독립운동 거점 우수리스크

극동 최대 도시 하바롭스크 지나

몽골국경엔 광활한 대초원 펼쳐져

한국인 닮은 부랴트공화국도 눈길


신안촌 비문




◇블라디보스토크=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세 시간이 채 못 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시내에 있는 신한촌 기념비를 다시 찾았다. 이 기념비는 3·1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연해주에서의 독립투쟁을 기리고 러시아의 한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1999년 광복절에 세워졌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다.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성전이며, 청사에 빛난다. 신한촌은 그 성전의 요람으로 선열들의 넋이 깃들고 한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라고 쓰여 있다.

다음날 오전11께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역사에는 과거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달리던 우람한 증기기관차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전시돼 있고 이곳이 횡단철도의 기점이라고 알려주는 푯말도 있다. 객실은 2, 4, 6인실 모두 침대차인데 일찍 예약한 덕분에 2인실을 탈 수 있었다. 양쪽 벽면에는 마주 보는 2개의 침대, 가운데는 작은 탁자가 있고 커튼이 쳐진 창문으로는 언제라도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돼 있다. 열차 내에는 식당차가 따로 있으나 객차마다 뜨거운 물이 준비돼있고 객실 내에도 콘센트가 있어 준비해온 라면·햇반 등으로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우수리스크=한 시간 남짓, 열차는 지선에 있는 ‘라즈돌노예’역을 스쳐 지난다. 회한의 역사가 서린 곳이다. 지난번 연해주 방문 때 이 역에 들러봤으나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1937년에 바로 이곳에서 떠났을 그 시절의 우리 동포를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이 들어 숙연해졌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열차는 100㎞를 달려 약 2시간 후 연해주 독립운동의 중심지 ‘우수리스크’에 도착했다. 연해주는 만주의 북간도와 함께 수많은 애국지사가 의병과 광복군이 돼 조국광복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일제와 맞서 싸운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유·무명의 우리 선조들이 조국의 광복과 후손의 번영을 위해 이곳에서 스러져 갔다는 사실에 머리가 숙어졌다.



◇하바롭스크=열차는 다시 600㎞를 계속 달려 오후11시께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이 만나는 곳 부근에 위치한 극동 최대의 도시 ‘하바롭스크’에 당도했다. 1858년 중국과 아이훈조약을 체결하면서 군주둔지가 됐고 이후 시베리아횡단철도 건설로 이 지역의 중심지가 된 신흥도시다. 항일운동과 한인 사회주의자들의 근거지였으며 최초의 여성 한인 공산주의자인 김알렉산드라가 33세의 나이로 1918년 러시아혁명 당시에 백군(정부군)에 의해 처형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녀는 열혈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연해주와 시베리아 일대에서 활동했다. 죽기 전 조선 13도를 기리며 13발자국을 걸은 뒤 총에 맞아 순국했고 그 시신은 아무르강에 버려졌다. 열차에서 내리니 철로 변에 인근 주민들이 나와 딸기·머위 등 과일과 집에서 구운 빵·과자류를 좌판에서 팔면서 여행객을 맞고 있었다.

◇스코보로디노~네르친스크=몇 개의 역을 더 지나면서 1,200㎞를 달려 다음날 오후6시가 넘어 ‘스코보로디노’역에 이르렀다. 만주대륙 최북단에 접하는 아무르강 유역의 도시로 바이칼·아무르철도(BAM)와 연결되는 곳이다. 열차는 700㎞를 달려 다음날 아침8시께 네르차강을 건너 과거 중국·러시아의 교역 중계지였고 양국 간에 네르친스크조약이 체결된 도시 ‘네르친스크’ 인근을 지났다. 러시아의 요새이자 교역 중심지였던 이곳은 시베리아횡단철도가 비켜가는 바람에 쇠퇴한 도시다.



◇치타~울란우데=이제 열차는 서쪽의 몽골 국경으로 다가갔다. 이곳부터는 광활한 대초원이 나타난다. 말 달리기 좋은 전형적인 초원길을 300㎞가량 기차로 달려 오후3시께 ‘치타’역에 닿는다. 동부 시베리아의 광공업과 문화중심지인 치타는 ‘하얼빈’ ‘창춘’을 지나 두만강 유역의 ‘투먼’까지 연결되는 만주횡단철도(TMR)의 기점이다.

울란우데 거리.


이어 600㎞ 떨어진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에 도착했다. ‘붉은 강’이라는 뜻의 울란우데는 과거 몽골 제국의 땅이었다. 이곳이 기점인 몽골횡단철도(TMGR)는 울란바토르에서 중국 베이징과 톈진까지 연결된다. 부랴트 공화국은 러시아 땅이나 부랴트인이라 불리는 몽골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부랴트인들은 이곳 외에도 몽골의 헨티주, 그리고 내몽골 지역 등에 살고 있다. 칭기즈칸의 어머니가 부랴트인이라는 것을 이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부랴트인들은 생김새가 우리와 흡사한데 DNA도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이곳은 바이칼 남동부 지역으로 한민족의 시원, 이동 경로와 관련해 주목을 끄는 곳이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부랴트인들은 정말 한국인과 구별하기 어려웠다.

◇이르쿠츠크=울란우데에서 500㎞를 더 달려 바이칼호수를 끼고 돌아 드디어 이르쿠츠크에 당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70시간 이상을 달려와 오전8시가 좀 못돼 열차에서 내렸다. 바로 사우나로 직행해서 만 3일에 걸친 열차에서의 피로를 풀었다. 더운물에 시원하게 샤워를 하는 기분은 상쾌함 그 자체였다. 이르쿠츠크는 동시베리아의 중심 도시로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곳이다. 정치범의 유형지이자 10월 혁명 후 러시아 내전의 격전지이기도 한 역사가 서린 곳이다.

●바이칼 호수와 ‘신비의 땅 ’올혼섬

인류 400년간 먹을 깨끗한 물 담아

돌무지·헝겊천..샤머니즘 출발점



◇바이칼호수=이르쿠츠크를 뒤로하고 바로 바이칼호수의 올혼섬으로 향했다. 버스로 네 시간 동안 약 250㎞를 달려 체르노르두 마을을 지나 바이칼호수의 허리춤에 해당하는 곳에 있는 나루터에 이르렀다. 마침내 바이칼호수가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전 세계 담수호의 5분의1을 차지하는 가장 큰 담수호로 인류가 400년간 먹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을 담고 있는 곳이다. 바이칼호수는 약 365개 강에서 물이 흘러들어오고 안가라강 단 한 개 강으로만 물이 빠져나간다. 이곳은 북방 초원로의 중심에 위치해 북방 기마민족의 삶의 터전이 됐던 곳이다.

올혼섬의 상징 부르한 바위




◇올혼섬
= 나루터에서 페리를 타고 바이칼호수의 22개 섬 중 가장 큰 신비의 땅 올혼섬에 도달했다. 섬 부두에서 군용차를 개조한 지프차를 타고 다시 초원길을 약 1시간을 달리면 ‘후지르’ 마을이다. 가는 곳마다 옛 우리나라나 몽골에서 볼 수 있는 성황당과 유사한 돌무지와 나무에 색색으로 묶은 헝겊 천을 볼 수 있었다. 옛날부터 하늘에 소원을 빌면서 나무에 헝겊을 묶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4,500㎞를 달린 끝에 올혼섬의 로지에서 마침내 휴식의 첫 밤을 맞았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섬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마을을 출발해 올혼섬의 상징 ‘부르한 바위’로 향했다. 샤머니즘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으로 최초의 샤먼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북방민족 샤머니즘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이어 올혼섬의 마지막 일정으로 섬의 북쪽 끝에 있는 ‘하보이곶’까지 가서 끝없이 펼쳐진 바이칼호수의 장대한 전경을 눈에 가득 담았다.

올혼섬 방문 후 다시 이르쿠츠크로 돌아와 항공편으로 귀국했다. 기차로 70여 시간 걸리던 여정이 불과 네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베리아횡단철도와 바이칼호수로 이어진 여정에서 한민족의 시원, 고대에서부터 시작된 광활한 만주 지역 일대에서 전개된 한민족의 역사, 근세에 한민족의 애환과 독립운동을 위해 불타올랐던 선현들의 발자취 등,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한민족의 삶의 흐름을 느껴볼 수 있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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