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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암스트롱 발자국, 우주 향한 갈망 아로새기다

■별들과의 대화-아폴로가 달에 두고 온 것들

심채경 경희대 우주과학과 학술연구교수

1969년부터 1972년까지 4년간

총 7대 아폴로에 30여명 지구인

토양 채취, 태양풍 측정기 등 설치

현재까지 다각도 달 분석 이어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끝없는 열망

달 넘어 화성·토성 등 뻗어나가

우주정거장에 망원경까지 띄워

韓도 2020년 달 뒷면 탐사 나서

이게 다 박막례 할머니 때문이다. 유튜브에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올리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박막례 할머니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려. 누가 나 우주 좀 보내주면 쓰겄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뭐든지 해보고 싶고, 우주여행도 겁나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인터뷰를 읽으며 귓불까지 빨개지는 느낌이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천문학자로서 우주에 가보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아니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주에 다녀오면 골다공증을 걱정해야 한다는 농담도 던지며 재치 있게 답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아, 72세 할머니만도 못한 나의 도전정신이여. 나의 이 부끄러움은 다 할머니 때문이다.

우주 대스타 할머니의 인터뷰를 읽고 난 지금도 같은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내 대답은 여전히 ‘아니오’다. 이번에는 골다공증이 아니라 영화 때문이다. 미국 중부에서 열리는 달·행성과학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 좁은 비행기 좌석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열 몇 시간을 날아가는 와중에 하필 영화 ‘퍼스트 맨(First Man)’을 보고 말았다. 영화는 냉전시대 미국의 비행사였던 닐 암스트롱이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처음으로 우주비행사를 모집할 때 선발돼 극한의 훈련과 사고로 동료들을 잃는 고난 끝에 마침내 달에 다녀오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낸다. 화면 속 우주선은 어쩜 그리 좁고 숨 막히던지.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선에 들어갈 때 한쪽 끝만 열어 둔 침낭에 들어가듯 좁은 틈새에 가까스로 몸을 집어넣었다가, 나올 때는 번데기 속에서 탈바꿈한 성충이 고치의 틈을 비집고 탈출하듯 빠져나왔다. 주인공이 우주복을 입고 헬멧을 쓰면 관객에게는 그의 숨소리만이 들렸다. 비좁고 공기 탁한 기내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내가 암스트롱이 된 기분이었다.

1969년 11월 아폴로 12호의 사령관 피트 콘래드가 31개월 전 같은 곳에 도착했던 무인 탐사선 서베이어 3호를 점검하고 있다. /NASA




올해는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긴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같은 시기 발족해 올해 함께 50주년을 맞은 미국 달·행성과학회에서는 아폴로에서 얻은 과학적 발견들을 되돌아보는 논문이 줄줄이 발표됐고 마지막으로 달에 다녀온 우주인 해리슨 슈미트가 와서 강연했다.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 열두 명의 지구인이 달에서 걷고, 암석과 토양을 채취하고, 레이저 반사판이나 태양풍 측정기, 월진(달의 지진) 검출기 등을 그곳에 두고 왔다. 1967년에 보냈던 서베이어 3호 탐사선을 2년 뒤 미국의 아폴로 12호 우주인이 방문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만 수백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됐고 달 탐사에 볼트 하나라도 이바지한 관련 종사자의 수는 수십만 명에 이른다. 인류의 달 착륙을 믿지 않는 자들의 수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일각에서 음모론이 제기되거나 말거나 과학자들은 아폴로 우주인들이 설치한 반사경에 지난 수십 년간 레이저를 쏘며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를 꾸준히 측정하고 있으며 달에서 채취해온 총 0.5톤가량의 표본을 오늘날까지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50주년 학회에서 분석 결과를 발표할 때 객석에 앉아 있는 슈미트에게, 그리고 모든 아폴로 우주인들에게 눈물겨운 감사인사를 잊지 않았다.

아폴로 11호가 달에서 찍은 ‘지구돋이’. /NASA


그가 마지막으로 달에서 떠나온 1972년 이후로 달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동네 진흙탕에 찍힌 내 발자국은 진작 지워졌지만 달에는 그의 발자국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고작 4년 동안 인류는 7대의 아폴로 우주선에 30명이 넘는 우주인을 달 궤도로, 그리고 다시 지구로 실어날랐다. 아폴로 계획이 종료되고 무려 24호까지 번호가 붙여진 구소련의 달 탐사선 ‘루나’ 시리즈마저 1976년에 막을 내리자 달에는 다시 별똥별 말고는 무엇도 찾아오지 않는 고요가 내려앉았다. 달 탐사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돌연 멈춰버렸다. 컬러 필름으로 찍어도 어차피 회색인 그곳의 풍경처럼 달은 그렇게 익숙하고도 생경한 모습으로 남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달 탐사가 멈춘 것이 아니라 다른 행성과 소행성으로, 더 먼 우주로 나아가고 있었다. 중세시대가 실은 암흑기가 아니었던 것처럼 1980년대에도, 1990년대에도 인류는 여전히 달로, 그리고 그 너머로 도약하느라 분주했다.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화성으로, 목성으로, 토성으로 향했다. 우주에 망원경을 띄우고 태양계 너머 다른 별 주위에서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수도 없이 발견해냈다. 혜성에 올라타고 소행성의 흙을 지구로 가져왔다. 태양 가까이에도 가고 태양계의 끝자락에도 갔다. 아, 우리 지구인은 좀 멋진 종족인 것 같다.



더 멋진 것은 우주 탐사에서 얻은 관측 자료는 대략 1년 전후의 독점기간 후 전 세계에 공개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곧 이 미풍양속을 따르게 된다. 오는 2020년 말 한국형 시험용 달 궤도선(KPLO)이 국내에서 개발된 관측기기 여러 대를 싣고 달로 향할 예정이다. 처음으로 달의 뒷면을 편광 관측하는 시도도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관측 자료를 우리도 전 세계에 공유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다시 집중적인 달 탐사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에서는 달에 우주인을 보낸다는 계획이다. 박막례 할머니를 당장 우주에 보내드릴 수는 없지만 마치 달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선명한 달 풍경 사진을 계속해서 보여드릴 수는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왜 잊지 못하고 다시 달로 향하는 것일까. 아마도 아폴로는 우리의 마음을 가져가서 달 한편에 남겨두고 온 것 같다.

심채경 경희대 우주과학과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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