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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동북아 외교 매트릭스와 한국의 길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美中대립 등 얽히고설킨 정세 속

北 비핵화 대신 제재해제 몰두

대화 앞서 동맹강화 등 노력해야





매트릭스(matrix)는 가로세로로 이어지는 숫자나 기호의 행렬, 그물처럼 엮인 망(網)과 같은 복잡한 의미를 가진 단어다. 이 낱말처럼 지구촌에서 가장 복잡한 외교관계가 얽혀 있는 곳이 동북아시아가 아닐까 싶다. 각국이 분주한 외교 행보를 전개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옛 속담이 현실로 다가올까 두렵다.

지난 일주일을 되돌아보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으로 중국이 북한 문제에서 주도권을 잡나 했더니 다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로 상황이 반전된다. 친서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고 밝힌 북한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북한이 남북 간의 줄타기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며칠 후 개최되는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만날 미중 양국은 패권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자기편 챙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모두의 셈법이 다르고 그 속내도 알기 어렵다.

북한의 비핵화와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는 일은 한국 외교의 숙명과도 같은 과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역내 정세에 미묘한 변화가 목격되고 있다. 시 주석의 방북과 관련한 중국 언론의 수많은 보도 어디에도 비핵화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를 통해 실무협상을 제안한 것 같은데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겠다는 하노이 정상회담 직후의 호기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도발을 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던 ‘외교적 성과’가 사라지게 되는 딜레마 때문이다.

북핵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미중 패권경쟁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합법적 핵보유국인 두 나라가 서로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서로 싸우는 와중이니 북핵 문제를 풀기가 더 어려워진다. 미중 모두에 있어 북핵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패권경쟁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핵을 보유한 북한이라도 자국에 도움이 되면 눈을 감는다. 지난 2013년 5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특사로 베이징을 방문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겸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게 ‘비핵화 언급 없이는 만나주지도 않겠다’던 시 주석이었다. 하지만 비핵화에 진전이 없음에도 환한 얼굴로 방북을 하는 모습에서 더 어려워진 북핵 폐기 환경을 볼 수 있다.



현시점에서 북한에 남은 과제는 하나다. 대미관계 개선을 통한 제재 해제다. 북한에 미국이 필요한 것은 대북제재망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재만 사라지면 북한 경제는 날개를 단다.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생각하는 대미 협상의 일차적 목표는 제재 해제다. 그때까지 핵무기와 핵물질을 보유하면 북한은 핵 보유로 갈 수 있다. 그러니 북한은 비핵화의 최종상태나 로드맵에 합의해줄 수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대화만 하면 문제가 풀린다고 믿는 듯하다. 북측의 요청도 없었는데 쌀을 보내고 의혹 많은 북한 목선의 삼척항 정박에도 제대로 된 심문 없이 두 명을 돌려보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집착은 외교를 하자는 건지 국내정치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화웨이 문제에 대한 선택의 순간일 수도 있는데 오로지 북한 문제에만 몰입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매트릭스’에는 주인공 네오가 어린 현자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그 현자는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숟가락을 휘려하는 네오에게 “숟가락을 휘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불가능해요. 진실만을 생각하세요. 숟가락이 없다는 진실”이라는 조언을 해준다. 진실은 북한의 핵 보유 의사와 얽히고설킨 역내 이해관계다. 만남만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기대는 있지도 않은 숟가락을 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북핵 폐기를 위해 동맹을 강화하고 주변국을 설득하는 일이 우리가 가야 할 현실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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