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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반전주의자 '해병' 버틀러

1940년 사망...'전쟁은 사기' 고발

스메들리 D 버틀러. 1940년 6월21일 사망(59세)한 미국 군인이다. 1898년 미국·스페인전쟁이 터지자 나이(17세)를 속이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3개월간 훈련을 받은 후 소위로 임관한 그는 1931년 전역할 때까지 121회나 전투에 참가해 수많은 전공을 쌓았다. 가장 많은 훈장(16개) 수훈자로도 유명하다. 미군 최고의 영예인 ‘의회 명예 메달’ 2개와 해병대 최고 훈장인 ‘브레빗 훈장’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인물. 필리핀과 중국, 중남미와 프랑스(1차 세계대전)에서 참전한 그는 당시 미 해병대 최고위 계급이던 소장에까지 올랐다.

미국의 전쟁 영웅이자 반전운동가 스메들리 버틀러 장군./위키피디아




대령 시절에는 존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특별 명령으로 필라델피아 치안감을 맡아 경찰의 부정부패 일소와 조직범죄 소탕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전쟁 영웅이자 행정 능력까지 인정받은 그는 견제도 많이 받았다.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경고하는 발언으로 베니토 무솔리니와의 관계 유지를 원하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미움을 사 전역한 후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냈다. 미국 전역을 돌며 반전 연설의 마이크를 잡았다. 1935년에는 ‘전쟁은 사기다(War is a racket)’에서 미국의 전쟁이 ‘방어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전쟁’이었다고 규정했다.

버틀러의 책으로 들어가 보자. ‘전쟁은 돈을 벌기 위한 사기다. …(중략)… 이윤은 달러로 계산되지만 손실은 인간의 목숨으로 지불되는 유일한 사업이다. …(중략)… 알 카포네는 기껏해야 세 개의 구역에서 활개쳤지만 나는 세 개의 대륙을 누비며 사기를 쳤다.’ 버틀러 장군은 소설가들에게도 영감을 줬다. 용병 짓이었다고 고백한 중남미작전은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바나나 학살’로 나온다. 조지 오웰은 1949년작 ‘1984’에 ‘외국과의 전쟁은 부유층이 그것으로부터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일어난다’고 썼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1년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에 맞서야 한다’는 고별 연설을 남겼다. 미국은 버틀러를 별종으로 여길까. 오키나와 미 해병대 기지의 통칭이 ‘스메들리 버틀러’ 기지다. 전쟁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던 버틀러 장군은 일본의 침략을 경고하기도 했다.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전시 수입이 참호 속 군인의 봉급보다 많지 않도록 묶자’는 제안을 했다. 전쟁의 참상이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간다면 전쟁이 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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