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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게임=질병 지정 신중해야...모두가 공감할 자료 축적이 우선"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진단기준 모호...성급히 결론 내면 韓게임산업 소멸

과몰입 등 부작용 수수방관한 게임업계 반성해야

정부도 건강한 게임생태계 조성 위해 힘 보태길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WHO가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게임=질병’ 지정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와 게임업계·의학계가 심도있는 연구를 통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과학적 자료를 축적하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오승현기자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도록 권고한 세계보건기구(WHO)의 결정을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특히 WHO 회원국 중 우리나라에서 유독 논쟁이 치열한 편이다. 게임업계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결정으로 게임산업을 고사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게임단체를 중심으로 공동대책위원회까지 꾸렸다. 반면 정신의학계는 근거가 충분하다면서 질병 등록이 당연하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지난 10일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대한신경전신의학회 등 5개 학회는 질병코드 도입지지 성명을 냈다. 정부 부처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찬성 쪽인 데 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론도 찬반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특히 젊은 층과 고령층 간 시각이 확연히 다르다. 상당수 국민은 게임중독에 대해 공감을 표하면서도 게임산업은 살려야 한다는 태도를 보여 절충점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게임학회장을 맡고 있는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와 만나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해법은 없는지 등을 들어봤다.

-WHO의 게임 질병코드 권고는 왜 나왔다고 보나.



△아시아국에서의 압력이 있었다고 본다. 특히 중국 정부와 한국 의학계를 중심으로 한 조직적인 움직임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2년 모리 아키오라는 의사가 쓴 ‘게임 뇌의 공포’라는 책으로 빚어진 논란 이후 게임중독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는 상태다. 이 책은 게임에 집중하는 아이의 뇌가 치매를 앓는 뇌와 흡사하다는 내용으로 일본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데 에피소드 수준으로 끝났다. 10년 가까운 치열한 논쟁 끝에 모리의 주장이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한국과 중국, 특히 한국에서는 이런 주장이 여전히 먹히는 상황이다.

-게임 과몰입은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로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게임을 넘어선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에도 사회가 게임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그 사람이 게임에 빠진 나머지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아니면 환경적 영향이 게임을 많이 하게 만들었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게임은 범죄의 원인이 아니라 또 하나의 결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취약계층 청소년들이 과도하게 게임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을 스포츠나 다른 방향으로 유도할 방안을 국가나 지역사회에서 고민해야 한다.

-의학계에서는 게임중독 악영향 보고서가 도박중독보다 2배가 많다며 질병코드 지정에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하다고 자신한다.

△주장이 모호하고 허점투성이다. 2010년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산하 인터넷중독분과에서 연구한 인터넷(게임)중독치료지침을 보면 2010년 인터넷(게임) 중독률은 청소년 12.4%, 성인 5.8%다. 하지만 현재 이들은 게임중독자를 3%로 잡고 있다. 이런 고무줄 잣대를 들이댈 경우 심신이 건강한 청소년이 단지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게임장애인이 되는 셈이다. ‘게임중독자 3%’라는 수치를 인정해도 문제는 심각하다.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올해 청소년 인구(9~24세)는 876만5,000명이다. 이 중 3%라면 26만2,950명, 즉 청소년만 해도 26만여명의 게임 장애인이 존재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은 의학계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게 현실 아닌가.

△온라인게임의 대명사가 된 ‘리니지’를 봐도 마찬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리니지 모바일 버전인 리니지M의 경우 한 달간 등록 유저가 1,000만명이라고 한다. 질병코드 추진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3%가 중독자라면 30대와 40대 이용자 중 20년 동안 누적된 ‘게임장애인’이 전국 거리에 넘쳐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하는 전국 50개 중독치료센터에는 1년에 200명도 안 되는 등록자만 있고 이조차도 인터넷과 게임 중독이 혼재돼 있다. 따라서 순수한 게임중독자만 보면 등록자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질병코드라는 보호장치가 마련되면 오히려 게임산업이 발전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진단 기준의 모호성이다. WHO는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하며 통제능력을 상실한 채 12개월 이상 게임을 지속하는 것’을 게임장애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국내 도입에 주도적인 정신의학 관련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질병이라는 음지에 가둬놓고 어떻게 게임 진흥이 가능하겠는가.

-WHO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결정이기 때문에 권고를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WHO와 복지부의 공공보건에 대한 헌신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렇다고 과거 WHO의 실수를 모른 체할 수는 없다. 혹시 ‘교정강간’이라는 말을 아는가. 교정강간이란 동성애자들을 성적으로 교정한다는 미명 하에 성폭행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일부 의사들은 이들에게 전기고문을 하기도 했다. 이런 행위를 가능케 한 것은 WHO와 미국 정신의학회가 1950년 전후에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동성애를 질병코드에서 제외한 것은 그로부터 40년 뒤였다. ‘성전환증과 성 주체성 장애’라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신과 진단 항목을 삭제한 것이다. 게임이 질병으로 분류되면 게임은 질병유발원이 되고 동성애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임업계가 안이하게 대응을 잘못한 측면도 있지 않나.

<청론직설>위정현 게임학회장(중앙대학교 교수)./오승현기자 2019.6.12


△정신의학계는 집단화로 힘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빠르게 WHO가 권고 결정을 내릴 줄 몰랐고 그만큼 게임업계는 안일했다. 직접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거나 부담스럽다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의사표현을 피해왔기 때문이다. 1세대 게임업계 창업자들이 한목소리를 내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려고 노력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업계는 물론 학회에서도 지속적인 연구와 데이터 축적을 통해 게임의 순기능을 알리는 게 중요했는데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위’같이 여성들도 즐길 수 있는 가족게임을 개발한 일본 닌텐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가족게임은 일본 여성, 특히 주부층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임중독 논란에 대한 해외의 시각은.

△한국 게임에 대한 평가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특히 문화강국인 프랑스나 영국 등 유럽에서 더 높다. 지난해 봄 프랑스 체육장관과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프랑스 정부가 e스포츠 산업을 육성하고 싶은데 조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e스포츠 구단·선수·게임 문화 등 어느 조건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한국 전문가들의 지적에 펜싱선수 출신인 흑인 여성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게임과 e스포츠는 우리 청소년의 미래 문화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꼭 육성해야 합니다.” 문화적 자존심이 높은 프랑스가 이렇게 절실하게 한국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데 우리는 게임과 e스포츠 산업을 질병으로 낙인찍으려 하니 안타깝다.

-논란은 있지만 WHO의 권고는 현실이다. 복지부와 문화부 등 정부 부처 간에도 이견이 나오는데 어떤 해법이 있을까.



△WHO의 결정은 그야말로 권고일 뿐이다. 회원국들이 모두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고 알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정신의학회는 게임 질병에 대한 연구 결과가 엇갈린다는 이유로 결론을 유보하기로 했다.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만큼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WHO 권고라고 섣불리 결론을 낼 이유는 없다. 아직 4~5년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정부·게임업계·학계·의학계가 함께 충분한 논의와 연구를 축적한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 특히 의학계 내부의 활발한 연구와 토론이 중요하다. 의료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기존 중독 관련 센터 운영 활성화 등을 통해 다양한 게임장르, 플랫폼, 이용 대상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뒷받침돼야 누구나 수긍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의도된 데이터 생산은 그만두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축적하는 게 우선이다.

-게임은 여전히 수출효자 산업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할 일은.

△지금 게임시장은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중국에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칫 중국의 하청기지로 전락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질병코드 등록은 무너지는 산업의 등에 칼을 꽂는 격이다. 한국 게임산업이 한순간에 소멸할 수도 있다. 정부가 질병코드 등록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이와 함께 정부는 업계와 공동으로 게임인식을 개선하는 데 노력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업계도 재미있는 게임 개발에만 몰두하지 말고 건전한 게임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설 필요가 있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He is...

1964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광주광역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1987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 도쿄대에서 경영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대에서는 2001년 10월부터 약 2년간 연구교수로 일했으며 2004년부터 10년 넘게 일본 온라인게임부회 부회장을 지냈다. 국내에서도 2002년 한국게임산업연합회 자문위원을 거쳐 2005년 중앙대 게임콘텐츠연구센터 소장에 오른 게임 분야 전문가다. 지난해 1월부터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로 한국게임학회장과 콘텐츠미래융합포럼 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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