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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미국은 힘을 낭비했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달러 패권·관세 협박 권한남용에

국제시스템 흔들리고 반발 확산

美,다극화시대 걸맞게 행동해야





(America squanders its power)

이번주 우리는 흔치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미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 중 하나인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이 테헤란을 방문해 달러화에 기반을 두지 않는 이란·유럽 전용 결제시스템이 곧 가동준비를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방문은 ‘INSTEX’라 불리는 새로운 결제시스템을 공동 제작한 독일과 영국·프랑스 등 3국의 조율을 거쳐 이뤄졌다. INSTEX가 완전히 부적절하거나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실패작으로 판명될 때까지는 아마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지구촌 상거래에서 미국에 막대한 이득을 주는 달러화 결제제도를 무너뜨리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INSTEX는 탄광 안의 카나리아와 같은 일종의 경고신호다. 미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국들은 지금 미국이 행사하는 글로벌 파워를 가능케 만든 결정적 토대를 조금씩 허물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간단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권력 남용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의 지도국 위치에 앉아 있지만 그 같은 지위를 허물려는 여러 세력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중국의 굴기와 같은 깊숙한 구조적 변화다. 그러나 경제 전문매체인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하듯 그 나머지는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미국의 패권 남용에 대한 반작용이다.

우선 달러화 결제시스템을 대체할 새로운 금융 메커니즘의 필요성을 촉발시킨 원인부터 생각해보자. 영국·프랑스와 독일은 지난 2015년 체결된 이란 핵 협정에 서명한 비준 당사국이다. 이란이 협정을 준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일방적으로 합의를 깨뜨린 트럼프 행정부는 달러화의 힘을 이용해 다른 국가들이 이란과 일절 상업적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제재 조치를 취했다. 합의 파기와 동시에 핵 협정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린 것이다. (대부분의 국제거래는 편의상 달러화를 결제수단으로 이용한다.) 미국의 이 같은 권한 남용에 분노한 유럽 국가들은 결국 새로운 결제시스템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유럽만이 아니다. 중국·러시아와 인도 역시 달러 패권주의를 피해 가기 위한 나름의 메커니즘을 구축하려 시도해왔다. 지금까지 이들의 노력은 별다른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유럽의 중심 국가들을 비롯한 세계 여러 주요 교역국들이 달러화를 뒤엎으려 작심하고 나선다면 궁극적으로 기존의 국제 결제시스템은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한때 영국의 파운드화는 지배적인 국제통화였으나 달러화에 의해 대체된 바 있다. 이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 달러화가 영원한 ‘통화의 제왕’ 역할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남발하는 관세 협박을 눈여겨보라. 많은 경우 행정부는 ‘국가안보’ 우려를 이유로 내세웠다. 관련 법은 소련과의 지정학적 충돌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주요 산업을 보존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관세부과를 허용한 냉전 시대의 산물이다. 캐나다산 알루미늄과 일본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제니퍼 해밀턴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법무자문위원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미국이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자동차 관세를 정당화할 수 있다면 세계 그 어떤 국가라도 유사한 주장을 내세우며 거의 모든 상품에 대한 수입제한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무역관행에 대해 합법적인 불만을 갖고 있다. 베이징은 종종 법 조문을 충실히 따르는 듯 보이지만 법의 허점과 예외규정을 통해 법정신을 훼손한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트럼프 행정부가 스스로 벌이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트럼프가 중국에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무역규정과 국제법을 약화시킨다.

만일 내가 중국 측 협상대표라면 미국의 카운터파트에게 “우리 역시 트럼프가 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무역규정을 준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할 것이다.

다음으로 중국 첨단산업의 공룡인 화웨이를 으스러뜨리려는 트럼프의 노력을 살펴보자. 이제까지 미국의 화웨이 제재 조치에 동참한 국가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마저 미국의 테크놀로지에 의존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또다시 변덕을 부려 그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적 자립에 대한 욕구가 확산하면서 미국 기업들로부터 이탈하는 국가가 늘어날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무대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더 많은 플레이어가 더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새로운 시대로 이동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20년 전 중국이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했다. 오늘날 이 수치는 15%를 넘어섰다. 이런 시기에 워싱턴은 국제기구들을 활용하고 공감대를 확산하는 등 자제력을 갖고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나는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최신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보적인 패권주의를 확대하는 데 필요한 규정은 간단하다. 보다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가며 패권주의적인 태도를 덜어내라.” 하지만 트럼프는 이와 정반대의 접근법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다른 국가들과의 제한된 거래에서 단기적 이득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국제시스템 저변에 깊숙이 박혀 있는 미국의 힘이 시스템의 구조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이것은 향후 수십년 동안 미국이 대가를 치러야 할 나쁜 교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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