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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칼럼] 국민청원의 도마 위에 오른 軍지휘권

시시비비 떠나 지휘관 위축 우려

집단적 도덕적 해이 부추길 위험도

21세기 걸맞은 군 리더상 제시해야

병사들도 책임 정신 시민의식 필요

위기는 명약, 시련을 기회로 삼길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현역 군단장의 보직 해임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국민소통 게시판에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설마?’라고 여겼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청원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놀랄 일이다. ‘비합리적인 부대운영과 지휘·명령으로 수많은 젊은 군 장병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지휘관’이 요즘 같은 시대에도 있다는 얘기인가. 둘째, 지휘관의 지시와 명령이 국민청원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몰랐다. 국민청원이 아무리 희화화(戱畵化)하더라도 훈련에 대한 지휘 판단을 도마 위에 올리는 것이 과연 가당할까.

사상 초유인 군 지휘권과 관련한 국민청원을 놓고 온라인상에서는 추가 폭로와 반박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훨씬 심했다’는 얘기도 있고 ‘특정 부대의 경우 훈련 출동 인원이 정원의 5분의3 이하여서 엄격한 부대관리가 필요했다’는 반론도 나온다. 후자라면 심각한 문제다. 집단적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진 사회나 군대가 발전하고 승리한 사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무하다. 군 안팎에서 이런저런 얘기도 돌지만 아직 진실을 단언하기 어렵다. 군의 내부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미래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이 있다. 국민청원의 시시비비를 떠나 지휘관들이 위축되고 젊은 장병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훈련에서 흘리는 땀의 가치가 실전의 피만큼 중요하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복무기간 단축으로 낮아질 수 있는 병사들의 숙련도 역시 훈련을 통해서만 끌어올릴 수 있다. 장병들의 화단 정리나 작업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 민간업자에게 맡기려는 이유도 훈련에 열중하기 위함이다. 훈련과 준비 태세는 갈수록 중요해지는 데 반해 이번 국민청원은 최악의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병사들이 훈련에 대한 불만을 사회문제로 삼는 분위기에서 어느 지휘관이 강한 훈련을 결심할 수 있을까. 이번 사안의 심각성은 비단 지휘관과 병사·군대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인간은 서로를 위해 태어났다’고 말했다. 군대야말로 서로의 존재가 절실한 사회다. 누군가 전열에서 이탈하면 낭패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상호 신뢰를 잃은 군대는 늑대의 심성을 지닌 인간들이 파편화해 서로 싸우고 비방하는 야만 사회와 다름이 없다.



방법은 없을까. 있다고 믿는다. 문제와 해법은 항상 같은 곳에 있기 마련이다. 답은 ‘시민군대’에 있다. 인권에 대한 인식까지 포함하는 시민군대의 근대적 원형은 18세기 프랑스에서 나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지가를 올린 요한 볼프강 괴테는 1792년 발미전투를 프로이센 편에서 참관하고는 ‘오늘 여기서 세계 역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며 몸을 떨었다. ‘자유 평등 박애’을 기치로 내걸고 온 유럽과 싸우려는 프랑스의 시민군대를 보고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 이렇게 썼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큰 군대가 다시 나타났다.’

클라우제비츠가 ‘다시 나타났다’고 한 것은 그리스 시민병의 부활로 여겼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인 플라톤과 크세노폰 모두 시민병사였다. 특히 크세노폰은 페르시아 원정 경험을 ‘소아시아원정기(아나바시스)’로 남겨 훗날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자기가 알았던 세계의 대부분을 정복한 알렉산더는 시민병사로 이뤄진 그리스 중장갑 보병대 팔랑스를 전력의 핵심으로 삼았다. 미국의 전쟁사가 빅터 핸슨은 ‘살육과 문명’에서 ‘서구 문명이 세계로 퍼져나간 바탕에는 시민병 제도에 근간하는 군사적 우위가 있었다’고 강조한다. 시민군대의 전통이 없던 독일과 일본은 결국 2차대전에서 졌고 소련도 무너졌다.

군대와 사회는 같이 간다. 사회가 건강하면 군대도 건강하다. 그 역도 부분적으로 성립하지만 기본적으로 군을 둘러싼 병리 현상은 사회 전체의 혼탁과 무관하지 않다. 갈기갈기 찢어지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급기야 온라인으로 예비역 병사들이 지휘관을 공박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시련이다. 극복하지 못하는 시련은 수렁이 될 수도 있다. 기왕 불거진 문제라면 우리는 강하고 건강한 군대로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할 책임이 있다. 미물인 자벌레도 몸을 구부려 앞으로 나아간다. 21세기에 걸맞은 리더십과 시민의식을 갖춘 장병들로 거듭날 수 있다면 시련은 오히려 약이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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