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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시간 몸살앓는 현장]"소사장제·이중고용 등 '임기응변'해도 피해 확산" 아우성

"따놓은 계약도 포기...일감 해외로 넘겨야할 판" 발동동

근로자 "소득 줄어 외식 감소"...자영업자는 "폐업 위기"

잘못된 정책이 부른 부작용 돈으로 때우는 악순환 반복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0년도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정착 등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평택에 자리한 한 반도체부품 업체는 최근 교대생산직을 중심으로 불만이 거세져 노조가 의견취합에 나섰다. 오티(OT)로 불리는 오버타임 수당까지 얹으면 월 360만원 이상 됐던 직원들의 급여가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이후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 근무하는 김근형(가명)씨는 “주 52시간제를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3교대 생산직들은 여전히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며 “교대생산을 없애면 몰라도 그대로 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근로시간만 제한하면서 급여만 크게 줄어들었다”고 토로했다.

전국 버스노조가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임금 감소 등에 반발하며 15일 전면파업을 선언했지만 주 52시간의 파고로 고통을 받는 것은 버스 업계만이 아니다. 중견·중소기업계는 물론 유통 업체, 건설 업체 등 산업계는 물론 근로자·자영업자 등 전방위에 걸쳐 ‘직원은 임금 감소’ ‘기업은 계약 포기’라는 부작용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 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 업계는 공기 연장, 공사비 상승,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공기를 지키면서 주 52시간제를 지키려다 보니 이중고용 등의 각종 꼼수가 나오고 있다. 한 명의 근로자를 두 개 이상 업체가 이중고용하는 방식으로, 실제 근로시간을 늘리는 편법이다.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거 고용해 부족한 인력을 메우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다. 주요 건설사들의 경우 본사 내근직들은 주 52시간제를 대체로 잘 지키지만 공사 현장 직원들은 그러지 못해 내부 갈등도 커지는 상황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근로시간 조정 후 현장에서 올라오는 불만들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될 정도”라며 “본사 차원에서야 근로시간을 준수하도록 지침을 보내고 있지만 현장 사정 탓에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근 직원들에게 일을 더 시킬 수도 없고 난감한 노릇”이라고 했다. 건설용 자재를 만드는 C사의 종업원 수는 30명 남짓이다. 종업원 수만 놓고 보면 내후년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제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조만간 극소수의 인원만 남기고 나머지 인원은 소사장제로 돌릴 계획이다. 박성수(가명)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노사 간 갈등만 심화되고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이나 고용 창출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럴 때일수록 인력을 많이 데리고 가면 불확실성만 커질 수 있어 아웃소싱을 돌리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딱 잘라 말했다.



조선업은 지난해부터 늘어난 수주로 작업해야 할 물량은 증가하고 있지만 근로시간에 제한이 있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아직은 조선업이 보릿고개를 넘고 있어 무턱대고 인원을 늘릴 수 없는데도 주 52시간제를 지켜야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본사 영업 부문에서도 주 52시간제는 장애물이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현재는 인원을 늘려 교대근무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 또한 임시방편”이라며 “인원을 늘리고 싶어도 숙련인력이 적은데다 안전 문제도 있어 난감하다”고 전했다. 그는 “근로자들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일하는 게 아니라 작업복을 갈아입고 기계를 예열하는 등 준비시간이 필요한데 이런 시간을 업무시간으로 쳐야 할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이달부터 LG전자로 편입된 LG전자 서비스센터가 대표적이다. 그간 LG전자는 별도 법인인 개별 서비스센터와 도급계약을 맺어 서비스를 위탁했다. 개별 서비스센터는 직원이 50명 정도이기 때문에 300명 이상 기업에 적용되는 주당 52시간 근로와는 무관했다. 하지만 서비스센터가 LG전자에 편입되면서 달라졌다. 당장 여름 성수기를 맞아 서비스 수요가 폭주하는 상황에서도 주 52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넘쳐나는 일감을 따라가기 버거운 LG전자는 한시 인력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에어컨 수리 등의 업무가 폭주해 수백 명 정도를 추가로 뽑고 현재 인력들은 탄력근로제를 적용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한 임원은 “협력업체 노동자마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범주에 사실상 포함되는 바람에 대기업의 부담이 커진 상황인데 추가로 비용이 더 들어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감을 수주하고도 주 52시간제로 비롯되는 비용 부담 때문에 해외법인으로 일감을 넘기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다. 생산 여력이 되지만 근로시간 규제 때문에 직원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월급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인프라 설비 업체의 한 임원은 “우리만 해도 최근 해외에서 설비 수주를 했는데 국내 공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으로 전체 수주의 80%만 맡고 나머지는 베트남 법인에서 처리하도록 했다”며 “우리 근로자 입장에서는 일감이 줄어드는 것이지만 회사로서는 앞으로 일감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특수한 케이스에 근거해 추가로 인력을 고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후폭풍은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일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최혁수(가명)씨는 최근 근로시간 단축으로 손님이 줄면서 고민이 늘었다. 신논현역 일대는 전형적인 오피스 상권으로 근처에 위치한 두산인프라코어 등 직장인들의 수요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300인 이상 기업들이 모두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받으면서 최씨 가게는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됐다. 최씨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녁에 곧바로 퇴근하고 회식을 하지 않는 문화가 공고해지면서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며 “과거에는 한 달에 두세 번은 회식 손님을 받고는 했는데 요즘은 석 달에 한 번 회식 예약을 받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소연했다. 도기 업체에 20년 넘게 근무한 홍우선(가명)씨는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자마자 공장장을 붙들고 추가 근무수당이 없으면 애들 학원을 보낼 수 없다며 하소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홍씨는 “정부는 저녁 있는 삶을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한다고 하지만 있는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일 뿐”이라며 “하루벌이가 아쉬운 우리 같은 서민들은 하루 몇 시간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타격이 크다”며 장탄식을 쏟아냈다.

전문가들은 이번 버스대란은 시작일 뿐이라며 우리 사회 곳곳에서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회적 합의나 공감대 없이 주 52시간제를 시행했기 때문에 버스파업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다른 부분에서도 이런 사태가 폭발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며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부작용인데 미리 대처하지 않고 사후에 조치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주 52시간제에 따른 후폭풍이 멈추지 않을 것이 자명한 만큼 보다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 52시간 단축은 기업의 납기대응력, 인건비 부담을 동시에 올리는 역기능이 있다”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가격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지금은 정부가 정책의 부작용을 국민 세금으로 메우면서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연하·심우일·박한신·진동영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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