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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신구금' 인식 강해 사법판단이 바람직

사법입원제(법원이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결정)도입

노재성 아주대 의과대학 교수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위험한 정신질환자 거리서 만날 가능성 커졌지만

● 입원절차 변화없고 보호의무자에 모든 책임맡겨

● 급성 악화 환자 빨리 치료할수 있는 체계 필요

정신질환자의 비자의입원(강제입원) 여부를 법원이 판단하는 ‘사법입원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국회에서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과 관련해 사법입원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국회에 촉구했다. 현행법에서는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시키려면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와 전문의 2명의 진단이 있어야 하는데 환자가 진료를 원하지 않을 경우 강제입원이 쉽지 않다. 지난 1월 고(故)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사법입원 도입과 외래치료 명령제 강화를 포함한 이른바 ‘임세원법’이 발의됐지만 현재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사법입원 찬성 측은 중증환자의 강제입원을 인신구금으로 바라보는 사회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입원과정을 사법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강제적 구속력만 강화할 게 아니라 현재도 운영 중인 비자의 입원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신건강복지서비스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맞서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경남 진주 방화·살해 사건은 고(故) 임세원 교수 살해 사건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이지만 상상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피의자가 일상적인 정신과적 치료만이라도 받았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치료가 기술적 측면에서도 그리 어려울 것이 없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더욱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낀다.

조현병과 같은 중증정신질환은 당뇨병이 췌장에 이상이 생기는 질병인 것처럼 이상이 생긴 부위가 뇌인 질병이다. 이 질병의 특징적인 증상인 망상과 환청이 뇌의 이상으로 인한 현상이라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상식이다. 더욱이 망상이나 환청을 실제라고 인식하면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밀경찰이 나를 미행한다면 미행을 따돌리려 할 것이고 나를 살해하려고 한다면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려 할 것이다.



어떤 병이든지 빨리 진단하고 치료해야 예후가 좋다. 정신질환이 급성악화된 환자가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것은 내과 환자가 상태가 중해져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정신과적 입원이 치료 과정을 정하는 의학적인 결정보다는 인권을 침해하는 인신구속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시작은 중증정신질환으로 사회에서 격리된 채로 열악한 상태의 시설에 머무는 사람이 많았고 이들이 사회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물론 환자가 지역사회로 복귀해야 하는 것은 당위의 문제로 누구도 탈수용화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환자가 지역사회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럴 의사가 없기 때문에 선언적으로는 탈수용화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수용 상태를 유지하려는 분열적인 태도가 계속되고 있다.

반면 법적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어 입원을 억제하는 방안은 비용이 들지 않으므로 별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비용이 들지 않고 인권 보호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니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데 입원절차를 강화해서는 별 소득이 없었다. 통계상 비자발적 입원은 줄었지만 시설수용자를 줄이지는 못했을 뿐 아니라 질병이 급격히 악화돼 입원치료가 필요한 급성기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어렵게 만들었다.

이번 두 사건처럼 이제는 망상에 의한 분노로 스스로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정신질환으로 인해 가장 위험한 상태인 사람을 응급실이 아니라 거리에서 만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이런 우려는 임 교수 사건에 의해 현실이 됐지만 논의만 무성했을 뿐 최근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서도 입원절차는 변화가 없다. 더욱이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책임을 전적으로 보호의무자에게 두고 있는 것도 이전과 마찬가지인 점을 보면 중증정신질환의 치료 및 관리에 대한 국가의 인식은 말만 번지르르했을 뿐 실제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정신건강복지법 40조는 보호의무자가 환자의 보호와 치료와 재활에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위험한 행동도 막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호의무자는 항상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결정 내리는 것이 당연할 뿐 아니라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이라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증정신질환의 부담 정도가 보호의무자가 홀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넘으며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지금의 체계에서 보호의무자가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결정을 내리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시설에 장기 수용된 사람 중 대부분이 보호의무자가 없거나 보호의무자의 여건이 환자를 데려갈 수 없는 상태인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조현병의 악화가 당뇨병의 악화처럼 간주될 수 없으며 정신과적 입원이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것과 같은 의학적인 결정이 아니라 인신구금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인식이라면 본인 의사에 반하는 입원과정은 당연히 사법적 판단에 의해야 한다. 입원을 권유하는 의학적 판단을 경제적 이익이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속셈이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정신과 질환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병이 아니므로 입원도, 의학적 치료도 필요 없다는 철 지난 주장을 무슨 혁신적인 견해처럼 읊어대는 사람들이 있다. 더욱이 정신과적 입원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의 속내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심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에서 자유로운 주체여야 환자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이 또한 사법입원이 필요한 이유다. 물론 입원제도를 변경해 중증정신질환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리라 기대한다면 망상이다. 그러나 수용 중인 만성적 상태의 환자가 어렵지 않게 사회로 복귀하는 체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성악화되는 환자를 빨리 치료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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