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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영국 가터훈장의 기원

1348년 첫 제정





1348년 4월23일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흑태자를 비롯한 25명에게 특별한 훈장을 내렸다. 자신도 포함된 26명의 기사단 전원에게 내린 훈장의 이름은 ‘가터 훈장(Order of the Garter·사진)’. 최초는 아니지만 671년 동안 수훈자가 1,024명에 불과할 만큼 권위를 인정받는 훈장이다. 기록에 남은 최초의 무훈 훈장 수여국은 아라곤(1317년). 헝가리(1325년), 카스티야(1330년) 등이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왕국, 동쪽 튀르크족과 싸우며 훈장을 만들었다. 에드워드 3세가 훈장을 제정한 것도 백년전쟁의 연장선이다.

가터 훈장의 기원은 불확실하다. 가장 널리 퍼진 해석은 칼레 점령(1346년) 직후의 무도회 기원설. 미모를 자랑하던 솔즈베리 백작 부인의 가터벨트가 흘러내려 분위기가 야릇해지자 에드워드 3세가 가터를 집어들고 자신의 다리에 묶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나쁜 쪽으로 생각하는 자, 부끄러운 줄 알라.” 제정 초기에는 양말 끈 모양의 가터 훈장을 다리에 묶기도 했다니 그럴 듯하지만 이런 내용이 기록된 문헌은 1460년에나 등장한다. ‘사자왕 리처드’가 12세기에 제정한 훈장을 에드워드 3세가 부활시킨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흥미로운 인물은 흘러내렸다는 가터의 주인 솔즈베리 백작 부인(켄트의 조안). 영국과 프랑스 왕실의 피를 고루 받은 왕족으로 국왕의 조카였던 그는 12세에 비밀 결혼한 26세 귀족이 전쟁터로 떠나자 이름 해 동갑내기 귀족과 결혼해 무도회 당시(18세)에는 솔즈베리 백작 부인으로 불렸다. 무도회 1년 뒤인 1349년 전쟁에서 돌아온 첫 남편 토머스 홀랜드가 주장한 비밀결혼의 합법성을 교황이 인정하자 그는 되돌아갔다. 신분도 솔즈베리 백작 부인에서 켄트 공작 부인으로 바뀌었다. 가터 훈장 수훈자이기도 했던 홀랜드와 11년 동안 5남매를 낳은 그는 1360년 사별하고 1년 뒤 33세의 나이로 새 남편을 맞았다. 상대는 두 살 연하의 사촌이자 국왕의 장남인 에드워드 흑태자.

세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40세에 낳은 둘째 아들이 1377년 할아버지로부터 왕위를 이은 리처드 2세다. 훈장의 기원이 어느 쪽이든 ‘리처드’와 ‘켄트의 조안’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미국의회 메달과 더불어 희소성 높은 훈장인 가터 훈장은 외국인에게도 수여된다. 근대 이후 일본 왕 4명도 연달아 받았다. 히로히토 일왕은 역대 수훈자 가운데 수훈(1921년)과 전쟁으로 인한 박탈(1941년), 복훈(1971년)을 거친 유일한 인물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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