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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포퓰리스트 공격에 중앙銀 '위험'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금리 인하·경기부양조치 요구

트럼프 등 줄기찬 중앙銀 공격

신인도 잠식·위기로 귀결될것





포퓰리즘 시대에 가장 유해하고 장기적인 해악으로 기록될 권력투쟁이 전 세계 민주진영을 휩쓸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에서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과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에 이르는 선출직 지도자들은 그들이 이끄는 국가의 중앙은행을 겨냥해 각자 줄기찬 공격을 퍼붓고 있다. 그리고 이는 파국적인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우선 중앙은행의 간략한 역사부터 살펴보자. 경제학자들이 지적하듯 지난 1970년대 정치인들은 선거철이 다가올 때마다 중앙은행을 얼러 경기부양에 나섰다. 물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 후폭풍으로 인플레이션의 파도가 밀려오면서 경제는 마비됐고 말 못할 고통이 뒤따랐다. 특히 중산층은 그들이 힘들게 모아놓은 여유자금이 불과 몇 년 사이 감쪽같이 증발해버리는 것을 손 놓고 지켜봐야 했다. 그 결과 지난 30년 동안 세계 각국은 자국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이때 미국은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선봉에 섰던 폴 볼커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을 강력히 주장하며 1970년대 미국 경제를 옴짝달싹 못하게 억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의 멍에를 깨뜨렸다.

오늘날 볼커와 정반대 방향에서 중앙은행에 대한 공세를 지휘하고 있는 지도자가 바로 트럼프다. 그는 미국 경제가 활기찬 성장세와 낮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음에도 금리 인하는 물론 경기부양 조치까지 요구하며 연준을 상대로 거센 공세를 펼치고 있다. 연준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그는 대통령에게 맹종하는 함량 미달의 두 후보를 연준 이사로 지명했다.

비단 트럼프만이 아니다. 지난해 에르도안은 터키 중앙은행 지도부를 자신이 직접 선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3월에는 터키 중앙은행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국 통화인 리라를 떠받치기 위해 무려 20억달러를 사용했다. 인도의 모디 총리도 자신의 심복으로 대체하기 위해 중앙은행 총재 두 명을 밀어냈다. 그의 시도는 성공했다. 2월 인도 중앙은행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국 총선에서 모디를 측면지원하기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게다가 모디는 가난한 농부들의 표심을 사기 위해 중앙은행 금고에서 40억달러를 꺼내 쓰는 어처구니없는 일탈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남아프리카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오랫동안 민영은행을 고집하며 치열하게 자율성을 지켜온 중앙은행의 구조 변경에 나섰고 필리핀 대통령은 중앙은행장에 자신의 정치적 측근을 임명했다.

심지어 유럽에서도 중앙은행들은 포퓰리스트 세력이 펼치는 일상화된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연합정부는 중앙은행에 1,000억달러에 달하는 금보유고 관리를 계속 맡길 것인지를 두고 연일 은행 지도부를 난타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괴를 단기적인 경기부양의 땔감으로 사용하려는 의도에서다.

전반적인 지적 분위기가 얼마나 변했는지 감을 잡고 싶다면 이것부터 살펴보라. 연준 이사회 부의장을 지낸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앨런 블라인더는 1997년 자신의 에세이에서 연준이 정책 결정에서 완전한 성공을 거뒀다며 정부는 세금정책 같은 다른 분야에도 연준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기적 이익을 노려 정책을 조작하려는 선출직 관리들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연준의 정책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독립적인 기관들과 위원회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 트럼프는 그와 정반대의 것을 원한다. 그는 단기적 당파정치의 열정을 연준에 주입하기를 원한다. 트럼프는 미국민의 정서가 바뀌었음을 느끼고 있다. 금융위기와 은행들에 대한 구제금융을 거치면서 연준의 신인도는 타격을 입었다. 비단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중앙은행들 역시 월스트리트에 지나치게 알랑대느라 메인스트리트를 구제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비판은 부분적으로 정당화되지만 미국의 경우는 아니다. 연준이 발 빠르게 적절한 조치를 취했고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세계의 어느 정부보다 금융위기에 유효적절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미국 경제는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였고 현재 금융 부문의 건전성 역시 다른 주요국을 압도한다.

그러나 설사 비판받을 만한 부분이 있다 해도 중앙은행이 지니는 독립성의 제도적 구조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해법이 돼서는 안 된다. 중앙은행들에 대한 공격이 즉각적인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신인도는 잠식당할 것이고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또다시 위기가 찾아오면 그제야 우리는 무서운 폭풍우를 견뎌낼 독립적인 기구를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무렵이면 이미 때는 너무 늦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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