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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와인과 ‘캔터베리 이야기'

초서, 1387년 궁정낭독회





1387년 4월17일 영국 리처드 2세의 궁전. 왕과 귀족 부부들이 모인 가운데 44세의 중년 남자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4월이 오면, 가뭄에 메말랐던/ 3월의 대지를 감미로운 소나기로 적셔주고/ 산천초목에 젖줄을 대어/ 온갖 꽃을 피게 하나니….’ 남자의 이름은 제프리 초서. 국왕의 개인 비서이자 외교관·시인으로 명망 높던 사람이다. 대작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는 이렇게 궁정낭독회로 시작됐다. 주목할 대목은 초서가 사용한 언어가 영어였다는 사실이다.

캔터베리로 향하는 29명의 순례자(나중에 2명이 합류해 모두 31명)가 돌아가며 경험과 생각을 털어놓는 형식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영국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베어울프’같이 북유럽 신화를 차용한 작품이 전승됐어도 영국인이 영국 얘기를 영어로 쓴 문학 작품은 ‘캔터베리 이야기’가 시초다. 초서는 31편을 쓸 요량이었으나 1400년 57세로 사망하는 통에 22편에 그쳤다. 미완성이지만 이 작품은 문장 구조와 서술 형식의 교과서 대접을 받았다. 초서를 ‘영문학의 아버지’로 꼽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출간도 초서의 사후에 이뤄졌다. 그렇다면 원고료를 못 챙겼을까. 그렇지 않다. 리처드 2세는 ‘캔터베리 이야기’를 쓰는 초서의 공로를 높이 사 매년 252갤런의 와인을 연금 명목으로 내렸다. 포도주병으로 환산하면 700㎖들이 1,363병. 책이 귀하던 시절이어서 더러 초서처럼 작품을 낭독하며 발표했으나 국왕의 답례를 받는 사례는 극히 드문 경우다. 왕과의 친분으로 외교관으로도 활약했던 초서는 피렌체에 머물며 ‘데카메론’를 이탈리아어로 쓴 조반니 보카치오와의 교류에서 얻은 문학적 영감을 ‘캔터베리 이야기’로 토해냈다.

템스강 남쪽 서더크의 ‘타바드’ 여관에 모인 순례자들의 얘기는 다양하다. 기사와 방앗간 주인, 변호사, 탁발승, 상인, 소지주, 수녀원장, 여러 남자를 거친 과부 등 순례자들은 불륜과 욕망을 드러낸다. 본당 신부처럼 하늘의 말씀을 경건하게 전하는 대목도 있지만 독자들은 외설과 예술을 넘나드는 대목에 빠져들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금속활자와 만나 대중화하며 영어의 표준을 만들었다. 백년전쟁 뒤끝이어서 왕과 귀족들도 불어를 버리고 영어로 눈을 돌렸다. 농민들의 일상어였던 영어는 초서 이후 명실상부한 영국 국어로 자리 잡았다. 영국으로서는 ‘물품 화폐’인 와인을 투자해 셈할 수 없는 과실을 얻은 셈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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