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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칼럼] 표류하는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한다며

법개정 나서자 공익위원 전원사퇴

시급한 건 법보다 위원회 정상화

상근 전문인력 보강·예산 늘려야





지난 2년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최저임금 공방이 올 들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한때 소득주도 성장과 노동정책의 상징과도 같았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정책도 이제 거품이 좀 빠졌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정상적인 심의조차 하지 못하며 표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9일 최저임금위원회에 2020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했지만 이는 형식 절차일 뿐 실제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다. 우선 심의 일정 등을 짜기 위해 전체회의를 열어야 하지만 회의 소집권자인 류장수 위원장을 비롯한 공익위원 9명이 지난달 모두 사퇴서를 제출했다. 2년여의 임기를 남겨놓고 있었지만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을 위한 법 개정에 돌입하자 그만둔 것이다. 정부는 당초 최저임금법 개정을 3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고 내년도 최저임금은 새로운 체제에서 심의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에 공익위원들의 사퇴를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그러나 위원회 개편에 대한 노사의 입장이 제각각이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기류도 적극적인 편은 아니어서 고용부만 몸이 달았다. 불투명한 국회 일정을 감안할 때 결국 기존 위원회를 복원해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따지고 보면 위원회를 바꾸든 아니든 특별히 달라질 것이 없다. 현행대로 가더라도 지금의 정치경제 상황에서는 내년도 인상률이 5%를 넘기기 어렵다. 정부 내에서도 지난 2년간 너무 과속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데다가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조차 그동안 좀 과속이 있었고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3만~4만명 정도의 고용 감소가 있었다며 속도조절론에 힘을 실었다. 통계지표를 봐도 2018년 최저임금은 이미 근로자 중위(평균) 임금의 60%에 육박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근로자는 300만~500만명에 달한다. 전체 근로자의 25%의 임금을 국가에서 결정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과도하다. 더구나 내년에는 주52시간이 중소기업으로 확대 적용되고 15일의 공휴일이 새로 법정 유급휴일로 전환돼 저임 사업장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라는 정치적 고려만 없다면 어느 모로 보나 내년도 인상률은 5%를 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2020년 최저임금을 위해 결정구조를 개편해야 할 긴급한 사정은 없다. 2017년 16.4%의 파격적인 인상률을 결정한 위원회가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구성됐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더라도 인상률을 결정하는 것은 구조가 아니라 정치적 변수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위원회를 왜 개편하려 했는지 문제의식을 되짚어볼 필요는 있다. 위원회를 전문가만으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가 참여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려는 목적은 최저임금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 기능을 강화하고 고용시장의 변화를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데 있다. 한마디로 위원회의 지능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얘기다.

위원회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 많은 근로자의 임금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다. 사무국 실무인력은 7명에 불과하고 직무도 행정지원에 집중돼 있다. 최저임금 심의에 필요한 연구 조사와 분석은 모두 비상근위원회에서 연구용역으로 때웠다. 위원회가 지난 2년간 중구난방의 최저임금 논란을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할 만하다. 구간설정위원회를 따로 둔다고 이런 사정은 변하지 않는다. 위원회의 지능을 높이려면 사무처에 붙박이 전문인력을 보강하는 편이 훨씬 낫다. 법 개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인력과 예산만 늘리면 된다. 행정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법 개정까지 하겠다며 국회에 매달리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정부가 놓치지 말아야 할 시급한 과제는 법 개정이 아니라 위원회를 하루빨리 정상화시켜 지난 2년의 최저임금 인상이 산업과 고용에 미친 효과를 분석하고 관련 자료를 축적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또 다른 정치 공방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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