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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북미 식민지를 살린 담배

1606년 버지니아 회사 설립

[오늘의 경제소사] 북미 식민지를 살린 담배
버지니아회사 문양

1606년 4월10일, 영국 왕 제임스 1세가 버지니아회사에 특허장을 내줬다. 상인들이 세운 런던회사와 플리머스회사에 버지니아 일대를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특허장에 명시된 첫째 목표는 무역 범위 확대를 통한 선박과 선원 수 증대. 후발 해양국가로서 언제든지 해군에 편입할 수 있는 장비와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뜻이 깔렸다. 스페인의 위협을 받는 땅에 프로테스탄트 식민지를 건설해 이방인을 개종시키자는 문구도 있었지만 국왕이나 버지니아회사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현실적인 목표는 따로 있었다. 금과 은. 스페인이 1545년 발견한 포토시 광산에서 막대한 은을 캐낸 후 유럽 각국은 신대륙의 광산에 목숨을 걸었다. 인력 송출도 현안이었다. 300만명 수준이던 영국 인구가 100년 만에 400만명을 넘을 만큼 폭증한 반면 살기는 더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사유 농경지의 목초지화(인클로저)로 소작농의 절반이 생활 기반을 잃었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비명 속에 농민들이 도시와 항구로 몰려들던 상황. 버지니아회사는 1606년 말 개척민 144명이 탄 세 척의 배를 띄웠다.

미국이 공식적인 시조로 여기는 메이플라워호보다 14년 앞섰던 정착민들은 ‘제임스타운’을 세웠지만 결과는 처절한 실패. 버지니아회사가 이후 10년 동안 1,700명 이상 송출한 정착민들도 질병과 기아에 시달렸다. 회사도 5만파운드가 넘는 손실을 기록할 즈음 ‘담배’라는 대박이 터졌다. 디즈니사의 영화 ‘포카혼타스’의 종족인 포와탄족에게 배운 담배 경작과 건조법에 힘입어 1618년 약 9톤의 담배를 모국에 보냈다. 4년 후 담배 수출은 27톤으로 늘어났다. 1638년 북미 식민지가 영국에 수출한 담배는 1,360톤에 이른다.

담배가 가져온 북미 최초의 호황에는 버지니아회사의 사업 방식 변경이 깔려 있다. 회사 직영의 농지를 운영하는 대신 정착민들에게 농지를 무상으로 제공한 뒤부터 생산성이 급격히 높아졌다. 버지니아회사는 누적 채무와 원주민과의 전쟁이 겹친 1624년 파산했어도 정착민들은 담배산업 덕분에 살아남았다. 국왕 직할 식민지로 바뀐 버지니아에서 생산된 담배는 유럽으로 퍼졌다. 호황은 사람을 부르고 북미는 번영 가도를 달렸다. 만약 버지니아회사가 기대했던 대로 금 광산이 발견됐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까. 중남미식 경제가 태동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땀 흘려 이룬 재화가 운으로 캐는 금과 은보다 값지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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