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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번화가서도 "NO 카드"…'현금 신앙' 日, 갈길 먼 '캐시리스'

'캐시리스' 정부·국민 속도차

카드·페이 등 비현금결제율 19%

한국 96%에 비해 현저히 낮아

재난 빈발·개인정보 유출 우려

점포도 수수료 부담감에 '거부'

대형 외식체인조차 "카드 불가"

현금 인프라 유지비 年1조엔

내년 '도쿄 올림픽' 대회기간

109억弗 손실 전망까지 나와

정부 "결제율 40%로 올리자"

포인트 환급 등 유인책 마련





“노 카드(카드 안 돼요)?”

지난 1일 일본의 대표적 번화가인 도쿄 신주쿠의 한 유명 돈가스 식당. 한국인 관광객이 신용카드를 내밀자 점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관광객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알려져 늘 손님이 북적이는 이곳에서는 현금으로만 결제할 수 있다. 돈이 부족하다는 말에 점원은 “가게 옆 골목 편의점에 현금인출기가 있다”고 안내했다. 인근의 덮밥집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본 전역에 점포를 둔 대형체인점이기도 한 이 가게는 자체 포인트카드나 파스모·스이카 같은 일부 충전식 (교통)카드와 현금만 결제수단으로 취급하고 있다. 신용카드는 쓸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오는 2025년까지 비현금결제 비율을 현재의 두 배인 40%까지 끌어올리겠다며 ‘캐시리스(비현금) 사회’를 공언하고 나섰지만 정부·기업의 강력한 드라이브와 현금에 여전히 익숙한 국민 간 속도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의 신용·직불카드나 ‘○○페이’로 통칭되는 전자결제 시스템을 활용한 비현금결제 비율은 19.8%에 불과하다. 한국(96.4%)은 물론 영국(68.7%)이나 중국(60.0%) 등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수치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이 비율을 2025년까지 40%대로 끌어올린다는 목표 수립을 골자로 한 ‘캐시리스 비전’을 발표하고 관련 위원회까지 만들어 속도전에 나섰다. 일본 정부가 캐시리스화를 서두르는 데는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가 배경이 되고 있다. 올림픽을 전후해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숙박시설이나 음식점에서 불편을 겪지 않도록 기존의 현금 중심 결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산업성은 신용카드 결제를 위한 인프라를 조속히 확충하지 않을 경우 2020년 방일 관광객이 4,000만명이라고 가정할 때 약 109억달러 규모의 기회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금결제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현금 지불 관련 인프라 유지에 필요한 비용은 연간 1조엔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인쇄, 운송, 매장시설, 현금인출기(ATM) 운영비, 인건비 등 직접비용을 계산한 액수다. 특히 점포당 현금 잔액 확인에만 평균 153분이 소요되고 인건비는 연간 5,000억엔이 들어간다는 지적이다. 미즈호파이낸셜그룹도 현금 관리와 ATM망 운영비 2조원, 소매·외식 업계의 현금 취급업무 인건비 6조원 등 총 8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파격적인 혜택까지 내걸며 ‘캐시리스’ 사회 구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올 10월 소비세율 인상(8%→10%)을 앞두고 캐시리스 결제수단으로 지불할 경우 한시적으로 결제금액의 5%를 소비자에게 포인트로 환급하기로 한 것이다. 기업들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소프트뱅크와 야후가 합작해 만든 결제 서비스 ‘페이페이’는 지난해 12월 25만엔 이하 금액을 결제하면 해당 금액의 20%를 포인트로 돌려주는 ‘100억엔 규모의 환급’ 이벤트를 진행했다. 라인페이 역시 비슷한 캠페인을 벌인 데 이어 최근에는 중고마켓사업자 메루카리가 만든 메루페이와 손잡고 자사 결제 서비스를 취급하는 가맹점을 상호 개방하는 내용의 업무제휴를 맺으며 시장 확대에 나섰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현금 사용에 익숙한 일본 사회에서 캐시리스가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진 등 재난에 익숙한 일본에서 ATM은 물론 카드·휴대폰 등 각종 전자·전파 시스템이 언제든 망가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현금 신앙’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민감한 개인정보가 걸려 있다는 점에서 관련 범죄에 대한 불안도 상당하다. 하쿠호도생활종합연구소가 2017년 말 실시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1.4%는 ‘캐시리스 사회가 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답해 ‘좋다(48.6%)’는 응답보다 높은 비율을 보였다. 조사 결과 일본인들이 캐시리스에 반대하는 이유로는 ‘낭비 같아서’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등이 꼽혔다. 여기에 많은 점포도 단말기·가맹수수료 부담 때문에 현금을 고집해 소비자들은 카드 결제의 필요성이나 이점을 당장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애가 타는 정부는 ‘캐시리스 장점’ 알리기에 발 벗고 나섰다. 경제산업성은 지난달 29일 라인페이와 메루페이·페이페이 등 일본의 대표적 비현금 결제 회사들을 불러모아 다양한 혜택을 소개하고 이들 시스템을 체험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또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조기퇴근을 장려하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와 캐시리스를 결합해 ‘프리미엄 캐시리스 프라이데이’ 캠페인을 펼치기로 했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은 “해보지 않고 꺼리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며 “(이용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전반적인 환경정비를 추진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만 일부 시민들은 “기업 참여율이 20%도 안 되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와 속도가 더딘 캐시리스를 억지로 엮어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각종 세금 징수에서도 캐시리스 수단을 확대하는 등 현금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이어갈 계획이다.
/도쿄=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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