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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경제침탈 509년의 데자뷔

1510년 삼포왜란 발발

[오늘의 경제소사] 경제침탈 509년의 데자뷔
부산 용두산공원에 있는 초량왜관 표지석.

‘제포(薺浦)의 왜인들이 초나흗날 갑주를 입고 활과 창검·방패로 무장해 민가를 불사르고 성까지 점령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5년 4월8일자의 골자다. 1510년 4월4일 삼포왜란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제포(진해)와 부산포(동래), 염포(울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변란에 대마도는 병력을 보탰다. 제포와 부산포까지 점령했던 왜인들은 보름 만에 꼬리를 내렸다. 조정에서 파견한 중앙군이 본격 개입하기 전에 변란은 마무리됐으나 조선의 인명 피해가 컸다. 백성과 군사 272명이 죽고 민가 796채가 불탔다.

진압 뒤에 조선은 삼포왜관을 폐관하고 왜와의 통교를 끊었다. 닫힌 통로는 조선에 빌붙지 않으면 먹고살기 어려웠던 대마도 등의 간청으로 2년 뒤 다시 열렸다. 삼포왜란의 발생 요인은 조선 거류 왜인의 급격한 증가. 당초 30채만 허가했으나 세종 말년 제포에만 2,000명이 득시글거렸다. 삼포의 왜인들은 면세인 어업과 소금 제조업 외에 밀무역으로 호황 가도를 달렸다. 조선인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까지 펼쳤다. 돈을 갚지 못해 왜인의 소작인으로 들어가고 처와 딸을 파는 사례도 잇따랐다. 마침 연산군에 대한 반정으로 등극한 중종은 개혁책의 하나로 안하무인 격인 삼포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삼포 왜인들이 밝힌 거병 이유인 ‘조선 관리들의 통제 강화’는 오늘날 일본 교과서에서도 되풀이된다. ‘응당 누려야 할 특권을 부당하게 제한한 데 대한 반발’로 왜곡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특권이라니! 조선은 왜인들을 달래면 해적 행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참 어긋났다. 삼포왜란 후에도 약조를 거듭 어기며 사량진왜변(1544년), 을묘왜변(1555년) 등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까지 일으켰다. 삼포왜란 발발 509주년, 끊임없는 침략과 식민 지배라는 과거를 접어두고 미래로 나가고 싶은 데 걸리는 것이 많다. 위안부와 강제징용을 부인하는 일본 정치인에게서 과거 왜구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라고 다를까. 거리에는 일본계 편의점과 대부 업체 광고 천지다. 학생들은 일제 문구로 공부하고 성인들은 일제 차를 자랑스레 타고 다닌다. 방송은 연예인들의 일본 현지 먹방을 송출하기 바쁘다. 일본 명승지는 한국 관광객으로 넘쳐나고…. 1965년 한일수교 이래 올해 6,000억달러에 달한다는 대일 누적 적자가 ‘일상생활의 구조’로 정착돼간다. 걱정이다. 먹고 마시고 습관적으로 자랑하며 구경하는 데 일본에 돈을 퍼주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어디로 갈지.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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