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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국은] "奮發有爲 너무 빨리 외쳤다"…中 자성 목소리

"미국의 부당한 비난" 토로 속 "패권경쟁 시기상조였다" 지적도

분발유위 기조 자치엔 이견 없어...習 "중국 정당한 이해 포기 안해"

지난 2월 19일 미중 무역협상이 열린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 국빈관에 미국과 중국 국기가 놓여 있다. /베이징=로이터연합뉴스




최근 KOTRA 베이징무역관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중국 대형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가 중국의 산업·무역정책이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다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성장해가면서 불가피하게 기득권자인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중 무역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첨단기술이나 군사·문화 분야에서 중국이 발전하는 한 양국의 충돌은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시진핑 지도부가 전술적 실수를 했다는 비판론도 적잖이 제기된다. 최근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러우지웨이 전 재정부장(장관)은 첨단기술 육성정책인 ‘중국제조 2025’와 인재 유치 프로그램인 ‘천인계획’을 비판하며 “실체와 달리 과도하게 홍보돼 역풍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개혁개방의 기수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 중국장애인연합회 명예회장은 연합회 총회 연설에서 “중국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진실을 추구해야 하며 냉철한 판단으로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 한다”며 거침없이 쓴소리를 내뱉었다. 이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 유훈 대신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한다)’를 내세운 패권 외교정책을 펼치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되면서 중국 정가는 물론 국제사회에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올해 수교 40주년을 맞는 미국과 중국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라이벌 패권대결 구도를 형성하는 가운데 중국 내부에서는 시진핑 지도부가 ‘분발유위(奮發有爲·할 일은 한다)’를 너무 일찍 외쳤다는 자성(自省) 섞인 비판의 분위기가 강하다.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 주석이 미중 수교 40주년 축전을 주고받았지만 10년 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후진타오 전 주석이 주고받았던 축전에 비하면 분량은 절반으로 줄었고 그나마 내용도 무역전쟁을 의식한 의례적인 덕담 수준에 그쳤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도 양회 기간 중이던 지난 8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대외 외교정책’ 기자회견에서 “지난 40년 동안 비바람 속에서 함께 걸어온 미중 양국 관계가 역사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신냉전 갈등을 겪는 두 패권 거인 미중 관계의 현주소를 역력히 보여주는 말이다.

양국 패권대결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역갈등이지만 그 뿌리에는 집권 2기 2050년까지 세계 최강대국의 영향력을 지닌 지도 국가로 부상하겠다는 시진핑의 ‘중국몽’ 야심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미국이 중국에 수교의 손을 내민 것은 미소 냉전기에 ‘죽의 장막’을 치고 잠자고 있던 중국을 깨워 소련을 견제하려던 것이 목적이었지만 지금 중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덩치 큰 거인의 모습이다. 경제적으로는 미중 수교 직후인 1980년 미국의 11%에 불과했던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2017년 현재 66%로 불어났다. 게다가 외교적으로도 시 주석 집권 이후 세계 2위 경제대국 위상에 맞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겠다는 패권 외교전략으로 미국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집권 2기의 중국 국가전략을 발표하는 2017년 10월 19차 공산당 대표대회 개막연설에서 시 주석은 중국 특색 대국 외교를 제시하며 분발유위를 강조했다. 덩샤오핑 시절 도광양회가 미덕이던 중국 외교정책은 1990~2000년대 유소작위(有所作爲·대국의 입장에서 할 일은 한다)에 이어 분발유위라는 위협적인 대외 팽창 정책으로 변모한 것이다. 시 주석은 당시 업무보고에서 “그 어떤 나라도 중국이 자신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쓴 열매를 삼킬 것이라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며 “정당한 중국의 이해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시진핑 집권 2기의 신패권 대외 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과 함께 큰 위기와 도전을 맞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를 상대로 신형 대국 관계를 요구했던 시진핑 지도부의 패권주의가 세계 최강국을 이끄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충돌하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당장 2,50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고율 관세 폭탄과 중국 간판 정보기술(IT) 업체 ZTE와 화웨이를 겨냥한 전방위 압박 공세에 중국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무엇보다 경제패권을 둘러싼 양국의 무역갈등에서 미국의 판정승이 유력해지는 가운데 중국 지도부 내에서는 외교력은 물론 국력의 차이를 절감하는 모습이 짙어지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중국 특색 대국 외교전략을 발표하면서 미국을 겨냥한 신형 ‘대국’ 관계 대신 신형 ‘국제’ 관계로 중국의 위상을 한 단계 내리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신형 국제관계라는 구호도 올해 전국인민대표대회의 리커창 총리 업무보고에서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국제사회에서는 섣부른 중국몽의 샴페인을 터뜨린 시진핑 지도부의 어설픈 신패권주의 대외 행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새어나온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담판 주역이던 룽융투 전 상무부 차관은 지난해 한 국제포럼 석상에서 “중국이 미국에 받는 무역 관세만큼 되돌려주는 대미 등량 무역보복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잘못된 정책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시진핑 국가주석의 ‘분발유위’ 기조 자체를 문제 삼는 중국인은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미중 무역협상에서 미국의 압박에 밀린 중국이 일부 양보하고 타협을 하면서도 구조적인 변화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다음주 베이징에서 재개되는 미중 무역협상은 막판 난항을 겪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이들 기업이 중국 법을 준수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중국 정부 관료들의 분위기는 무역협상에서 일부 양보하더라도 항복하는 것처럼 비쳐지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도 기존 강대국 미국의 아성에 이미 도전장을 내민 중국이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이 결국 전쟁을 하게 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맞서기 위해 꺼내 들었던 외교적 선전구호 ‘인류운명공동체’ 대신 중국 지도부가 아시아 공동 발전 등 지역 내 중국 역할론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중국은 전통적으로 다자 외교 가운데 대국 외교를 가장 중히 여겼다”면서 “시진핑 시대 중국 대국 외교의 핵심 상대국은 미국인데 사안별로 협력하는 방안을 구사하면서도 주권이나 영토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매우 강력하게 대응하는 입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홍병문논설위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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