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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콜럼버스의 귀항

1493년 1차 항해 마감...신대륙의 시대가 열리다

[오늘의 경제소사] 콜럼버스의 귀항
외젠 들라크루아 作 ‘콜럼버스의 귀환’/톨레도미술관 소장

1493년 3월15일 에스파냐 왕국 중남부 팔로스항.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끄는 작은 배 두 척이 항구로 들어왔다. 팔로스항은 기쁨에 젖었다. 출항한 지 일곱 달이 넘도록 무소식이던 선단이 살아서 돌아왔으니까. 더욱이 콜럼버스는 엄청난 소식을 전했다. ‘내가 옳았다. 서쪽으로 항해한 끝에 인도를 찾아냈다.’ 콜럼버스는 인도를 찾은 증거로 유럽에는 없는 식물과 새, 그리고 소량의 금을 갖고 왔다. 원주민 8명도 동반했다.

출항에서 귀항까지 225일 동안 콜럼버스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서쪽을 향한 항해에 동요하는 선원을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고 기함 산타마리호를 잃었다. 신대륙 남겨둔 선원 39명의 일부에게는 살해 위협도 받았다. 귀항 한 달을 앞두고는 풍랑을 만나 침몰 직전의 위기에서 탐험 성과를 알리는 편지를 밀봉 유리병에 담아 바다에 던진 적도 있다. 포르투갈을 거쳐 에스파냐에 돌아온 그는 항해 후원자인 이사벨 공동여왕에게 편지를 올렸다. “사람이 많이 사는 여러 섬을 찾아내 모두 폐하를 위해 점유했습니다. (중략) 신대륙에서 나는 금은 재화로 … 폐하는 예루살렘을 되찾는 성스러운 전쟁에 투입할 보병 5만과 기병 5,000을 충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귀에 쏙 들어오는 귀환 보고에 에스파냐 왕실은 3척에 89명이 고작이던 1차 선단과 17척 1,500명으로 2차 선단을 구성해 콜럼버스에게 맡겼다. 1차 항해에서는 원주민과 평화롭게 지냈던 콜럼버스는 2차 항해 이후부터는 잔인하게 바뀌었다. 에스파냐 왕실 역시 금광을 찾지 못하는 콜럼버스를 점점 잊어버렸다. 금도, 향료도 얻지 못한 콜럼버스 선단은 약탈로 돌아섰다. ‘세상에서 가장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묘사했던 원주민들이 금을 내놓지 않으면 동네 단위로 학살하고 어린아이를 개의 먹이로 던졌다. 콜럼버스 도착 즈음에 75만명 수준이던 인구가 불과 10년 만에 8만명으로 줄었다. 콜럼버스가 찾아냈다는 섬들은 아직도 세계 최빈 지역으로 남아 있다.

콜럼버스가 남긴 항해일지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은 단어는 으레 사용했던 ‘신’, 그다음이 ‘금’이다. 10년 동안 신대륙으로 네 차례 항해했던 그는 신(God)의 영광을 높이고 선교를 위해 교회를 두 곳 지었다. 금(Gold)을 짜내기 위해 콜럼버스는 300개가 넘는 십자가 처형대를 세웠다. 에스파냐 국왕은 콜럼버스 같은 탐험가들에게 이렇게 채근했다. ‘금을 가져와라. 가능한 인도적인 방법을 쓰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금을 가져와라. 많이!’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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